제목 | 전례음악 토착화에 대한 생각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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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수근 | 작성일2004-08-31 | 조회수1,175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전례음악 토착화에 대한 생각 2 + 찬미 예수님!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제 글에 대해 이런 저런 반응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게시판에 오르는 글들을 읽어보면서 “아~~ 이것 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글들의 논지 안에서 성음악 토착화와 전통성음악의 보급이 마치 서로 배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논지를 들여다보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강조점이 다르다 보니 마치 서로를 배척하는 듯이 비쳐지더군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음악 토착화와 전통교회음악의 보급과는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저는 교회전통성음악의 보급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그것을 적극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것을 절대시 하여 성음악 토착화를 위시하여 다른 기타의 성음악 활동들을 반대하는 편협함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차이점에 대해 깊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아 주시면 제가 전통성음악 보급을 배척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전례와 전례음악의 상관관계를 들어 전례음악 토착화에 대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전례음악은 바로 전례 안에서 봉사하는 음악을 뜻하고, 전례음악의 토착화는 바로 전례의 토착화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전례는 불과 41년 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개정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선 아주 간략하게 미사전례 형성의 역사를 설명해볼까 합니다. 여기서는 서방전례의 모태격인 동방전례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서방교회의 미사전례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대로 최초의 미사는 바로 예수님의 최후만찬이었습니다. 이 최후의 만찬은 유대인의 과월절 만찬(식사를 겸한)을 토대로 하고 있었고, 그 이후 초대 교회 안에서 점차 식사와 분리되면서 2-3세기 경에 성찬례의 형태로 발전되었습니다. 식사가 배제되는 대신 말씀의 전례가 성찬례 앞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신,구약 성서를 봉독하고 강론과 보편지향기도가 이어지는 구조였습니다. 2세기 말경 “응답시편”(오늘날의 화답송)이 독서 사이에 들어오게 되었고, “알렐루야”(복음환호송)는 4-5세기 경에, 그리고 “신앙고백”은 6세기 중엽에 미사 안에 삽입되었습니다. “자비송”은 원래 고대로마나 그리스 사회에서 신도들이나 군중들이 신이나 황제 또는 개선장군을 환영하며 맞이하는 군중의 환호였는데 서방전례 안에는 5세기 말 또는 6세기 초엽에 들어왔다고 추정합니다. “대영광송”은 4세기 중엽에 미사에 들어왔지만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 미사 때에만 불리다가. 점차 주교들의 미사로 확대되었고(성탄과 부활주일만), 사제 집전 미사에서는 7세기에 가서야 부활 주일과 첫 미사 때 부를 수 있도록 허용되었으며, 11세기 말에 가서야 주일과 축일 등 일반 미사에서 부를 수 있도록 확대되었습니다. 성찬례의 중심 기도문인 “감사기도”는 4-5세기까지만 해도 고정된 경문이 아니었고, 주례사제가 자유로이 바치는 자율기도였으나, 4-7세기에 서방교회에서는 “로마전문” 만을 사용하도록 고정 되었습니다. “거룩하시도다”는 그 전반부는 4세기에 동방교회를 통해, 후반부는 7세기경에 서방교회를 통해 도입되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4세기 중엽에 미사에 도입되었고, 평화예식은 이미 2세기에 도입되었으며, “하느님의 어린양”은 7세기 경에 도입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노 황제는 313년에 그리스도교 박해를 종식시키고 종교자유를 허용하였고, 380년 국교로 선포되면서 전례 안에 로마제국의 사회예식과 복장 등이 도입되게 됩니다. 그 후 서방전례는 로마전례, 갈리아 전례, 스페인 전례, 켈트 전례, 밀라노 전례 등으로 발전해 가면서, 본기도, 침묵기도, 영성체 후 기도 등 주례 기도들이 등장하게 되고, 장엄하고 긴 행렬이 생겨나면서 그 동반 노래들로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 등이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4-7세기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미사전례는 현행 미사 전례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이후 미사전례는 서서히 그 본질이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성체성사 신학이 발달하면서 성찬이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제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었고, 빵과 포도주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에만 치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9세기 후반부터 감사기도를 구약 성전의 지성소로 비유하여 사제 혼자 침묵 중에 바치게 되었고, 사제 혼자 드리는 미사가 빈번해졌습니다. 그리고 성체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으로 인해 신자들의 영성체 횟수는 줄어들게 되었고, 11세기부터는 성체로 누룩 없는 빵(그 전에는 식용 빵을 사용했었음)을 사용하면서, 손 영성체가 사라지고 입 영성체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이에 맞선 뜨렌또 공의회(1545-1563)는 성체성사 교리를 정비, 보강하여 그 신학을 바탕으로 1570년에 비오 5세의 <로마 미사 전례서>를 발간하였는데, 당시에는 고대 문헌에 대한 정보와 전례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프로테스탄트의 공격으로부터 가톨릭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전례의 본질 보다는 교회의 교계제도와 성체성사 신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례가 고정되었습니다. 아무튼 이후 400년간 일체의 토착전례(기존에 있어 왔던)를 배격하고 이 전례서만이 유일하게 서방교회 안에서 통용되었던 것입니다(200년 이상 고유 전례를 지내오던 수도회 전례는 예외였음). 그러나 근대화의 물결 안에서 교회 안의 지성인들에게도 전례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 들어 이것이 전례부흥 운동으로 발전되면서, 근 130년에 걸친 연구와 노력 끝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 꽃을 피우게 됩니다. 즉 그간의 전례운동을 바탕으로 하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을 1963년 12월 4일(뜨렌또 공의회의 페회일인 1563년 12월 4일부터 꼭 400주년이 되는 날)에 이 공의회의 첫 번째 공식 헌장으로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미사전례는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7년의 준비 작업을 거쳐 1970년(비오 5세의 <로마 미사 전례서>가 반포된 지 400년이 되던 해) 바오로 6세의 <로마 미사 전례서>가 출판되어 오늘날 전세게 교회에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400년 만에 개정된 미사전례는 전례 공동체의 능동적인 참여, 전례의 현대화와 토착화라고 하는 대원칙과 지침 하에 구성된 것입니다. 특히 큰 변화는 모국어 사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신자들이 미사를 이해하면서 참석할 수 있게 된 점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는데, 좀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은 이홍기 신부님이 쓰시고,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미사전례”(미사전례형성 부분은 이 책에서 인용한 것임) 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위 내용을 훑어보면 오늘 우리가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미사전례가 얼마나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후, 500년 후 한국에서의 미사전례는 또 다른 형태로 더 풍요롭게 발전되어 갈 가능성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하렵니다. 이렇게 전례음악의 주인 격이 되는 전례 자체가 위와 같이 변천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전례음악 역시 그 전례를 따라 변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전례는 변했는데 전례음악은 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요?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전례 자체가 개정이 되었는데, 그 전례에 봉사하는 역할인 전례음악은 오히려 절대불변의 위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앞서 전례 변천의 역사에서 본 것처럼 전례 안에는 그 형성과정에서 다분히 로마 제국시대의 문화적인 요소가 많이 도입되었는데, 음악 역시 그 중의 하나였지요. 즉 그것은 전례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문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역사 안에서 이 문화가 본질로 여겨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야금야금 비본질적인 것들이 끼어들면서 전례의 본 정신이 훼손되고 왜곡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전례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역사 안에서 전례 자체보다 전례음악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역현상도 있었고, 그때마다 교회는 새롭게 원칙을 정해 전례와 전례음악의 관계를 분명히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이점을 분명히 주지시켜 전례음악의 봉사적 임무를 명문화한 것입니다.(전례헌장 112항 참조) 그렇다면 개정된 전례에 잘 봉사하기 위해서는 그 전례의 개혁 정신을 잘 이해하고 그 정신에 맞추어 전례음악을 발전시켜나가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즉, 오늘의 전례가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 전례의 현대화, 그리고 토착화라는 초점에 맞추어 개혁되었다면, 전례음악도 그 주인을 따라 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노력해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은 것이지요. 그런데 한편 이런 측면만 강조될 경우 전통적인 전례음악은 사장될 위험이 있고, 교회 역사 안에서 전례음악으로 소중하게 보존되어 온 그레고리오 성가를 살리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현행 성음악 규정에서는 전통 성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행 성음악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규정에 대한 절대적 맹종 역시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전혀 불가능할 것 같던 미사가 개혁 되었듯이, 교회의 모든 규정은(라틴어 미사는 뜨렌또 공의회의 결정이었음을 기억해 보세요) 그 시대의 상황이 변하게 되면 자동폐기 되면서 새로운 규정들이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의 성음악 규정도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면서 새롭게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는 것이고, 좀 더 나은 규정으로 만들어가기 위하여 우리 성음악인들이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나치게 규정의 문구들에 매이기보다는 그 규정이 생겨나게 된 동기와 그것이 지향하는 정신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의 규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한 부분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 규정의 구조와 큰 틀을 볼 수 있어야 균형적인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 성음악 규정의 정신은 새로운 전례에 발맞추어 새로운 성음악을 만들어가되 전통 성음악의 보고를 보존하면서 이를 토대로 해나가라는 뜻으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성음악 규정이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 큰 사명을 지니게 되는 것인데, 하나는 전통 성음악의 보존과 보급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성음악의 정립, 특히 토착화의 과제입니다. 이렇게 이 둘은 상호보완 되어야 할 공동의 과업이지 서로 배척해야할 적대적 과업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비록 감히 토착화라고 하는 과업에 투신하고 있지만, 한번도 전통성음악의 보급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거나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양질의 전통 성음악 보급에 대해 적극 추천하고 저 역시 그 중요성을 역설하는 편이지요. 다만 다른 것은 안 되고 오직 이것만 해야 한다고 할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럴 때는 가차 없이 그 부당성을 지적하지요. 제 생각에 분명히 그것은 아니거든요. 저는 가끔 동료신부님들과 전례음악의 질적인 문제에 대해 입씨름을 벌이곤 합니다. 본당을 맡고 있는 신부님들은 미사 시간의 촉박함과 신자들의 성가 참여 문제를 들면서 쉽고 단순한(짧은) 성가를 부르기를 선호하지요. 저는 당연히 성음악의 질적인 향상을 위하여 이런 본당신부님들에게 양질의 전례음악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해서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구구절절이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해받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합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예. 바로 이것입니다.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꾸준히 자기 신념에 따라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이들, 이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성음악은 꾸준히 발전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류의 긴장 관계는 늘 교회 안에 있어 왔습니다. 비단 성음악 분야만이 아니라 교회 제반 사항에 걸쳐서 한쪽을 생각하면 그 반대가 걸리고, 저쪽을 거들다 보면 이쪽이 치이고 하는 식의 긴장과 갈등이 항상 생겨나지요. 그러나 오히려 저는 여기서 우리 교회의 풍요로움을 봅니다. 보수부터 진보까지, 가난한 이부터 부유한 이까지, 못 배운 이부터 많이 배운 이까지, 죄인부터 성인까지, 전례음악을 무시하는 이부터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삶을 바치는 이까지 두루두루 교회 안에 함께 있다는 것, 이것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인 것입니다. 결국 전례음악의 질적인 향상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고스럽게 추구해나가야 할 몫이고, 하느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풍요로운 은총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통 성음악 보급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은 전례음악의 질적인 향상에 큰 기여를 하시는 것이고 한국 교회를 위해 큰 봉사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전례음악의 질적인 향상이 오직 전통성음악의 보급에만 달려 있느냐 하는 데는 의문이 있습니다. 앞서 다양한 긴장관계가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씀드린 것 같이 전례음악에 대한 생각에도 긴장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긴장관계가 야기되는 근저에는 전례음악에 대한 정의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이런 저런 음악은 전례음악으로 합당하지 않은 것 아닌지요? 그럴 때 저는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아는 전례음악적 지식에 입각하여 쉽게 “안되지요”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전례음악 규정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나누었듯이, “전례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즉 그 대답은 “전례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바르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례를 하느님께 드리는 숭고한 제사로 보느냐 아니면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의 친교와 나눔인 축제로 보느냐에 따라 그 대답은 엇갈릴 것입니다. 오랜 시간 교회에서는 미사의 제사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전례본질을 왜곡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시 전례본연의 특성을 살려 축제적 성격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사전례는 이 양면을 다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전례음악과 관계해서는 여전히 미사의 제사적 성격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지요. 저는 어느 한 면에 치우치기 보다는 이 양면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전례음악을 어느 한 방향으로 획일화 할 것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음악부터 극히 단순한 음악까지, 고전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서양음악부터 국악까지, 대중적인 쉬운 음악부터 고도의 난이도를 요하는 어려운 음악까지 두루두루 장르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나름의 취향이 있으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고, 그에 반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가지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내가 혐오하는 그 부분에도 주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음악은 전례음악으로서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오해가 있을까 싶어 단서를 붙입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그 음악을 그 형태대로 그대로 들여와서 전례 안에 도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음악이든 그것을 전례에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유능한 작곡자가 있다면 그 음악적 특성을 사용하여 새로운 전례음악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근본적으로 이 음악은 안돼 하는 식의 편견은 제게 없습니다. 물론 저도 제 나름의 음악적 취향이 있으므로 제가 별로 즐겨하지 않는 음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전례음악으로 잘 채용되어 많은 이들에게 영적유익을 가져다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전례음악 토착화는 꼭 제가 주장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소 장황한 설명이 되었는데 얘기를 좀 모아보지요. 역시 결론은 전례음악의 토착화를 위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개혁된 전례와 연관하여 이 전례음악 토착화라는 주제는 결코 외면될 수 없으며, 각자 나름의 입장에서 이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먼저 글에서는 제가 협의의 토착화에 대해 강조했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사실 모든 성음악인들의 노력이 토착화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전통성음악의 보급도 그 탄탄한 기초 위에서 한국 성음악의 새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할 발판을 다지는 일이므로 토착화의 주요한 부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지요. 단 먼저 번에 지적한대로 의식이 문제입니다. 전통 성음악을 한국 성음악 재창조의 발판으로 보느냐, 아니면 절대적인 안주의 대상으로 보느냐 하는 차이지요. 더 나아가서 전통성음악을 발판으로 하는 다양한 전례음악의 가능성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배타적인 독선의 태도를 견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제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부분은 자신의 것만을 소중하게 여긴 나머지 다른 이의 노력을 배척하는 편견에 빠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부단히 우리를 자신의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촉구하고 계십니다. 성서에 숱한 말씀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던 시기에 베드로 사도 역시 유대인식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요빠 근처에서 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는데 그 안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야, 어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고, 베드로는 “절대 안 됩니다, 주님. 저는 일찍이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입에 대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하는 음성이 다시 들려옵니다. 이와 같은 말이 세 번이나 오갑니다.(사도 10,9-16 참조) 이것은 고르넬리오라는 백인대장(이방인)의 집에 가서 전도하도록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미리 보여 주신 암시였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속된 것과 더러운 것에 대해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하느님께서 가지고 있는 생각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응답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저는 이 말씀이 전례음악에 대한 왈가왈부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 집엘 갔고, 거기서 사람들 위에 성령이 내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정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베드로의 편견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음악은 그 자체로는 속되거나 거룩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속된 목적으로 작곡되어 속되게 사용될 때 속된 것이 되고, 그것이 거룩한 목적으로 작곡되어 거룩하게 사용될 때는 성가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마치 그레고리오 성가나 다성음악은 세상과 분리되어 처음부터 오직 교회 안에서 생성되어 교회 안에서만 불리웠던 선율들로 생각하지만, 음악사를 연구해보면 당시에는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비슷한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다만 성음악은 전례문을 소재로 하고 있고, 세속음악은 요즘 유행가가 그러하듯이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들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처럼, 음악도 훌륭한 전례음악가를 만나 새롭게 창조되어 전례의 도구로 쓰이게 되면 모두 전례음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따지고 보면 교회의 전통성음악도 그런 과정을 거쳐 성음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지요? 물론 오랜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물려져 온 이 소중한 전례음악의 유산을 잘 보존하고 전수하는 일이 아주 소중합니다만, 새로운 전례음악의 창조, 특히 한국 교회의 현실에 맞는 성음악 토착화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두 소중한 과업을 함께 이루어가려면 전례음악에 대한 우리 마음과 의식 안에서 편견을 몰아내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현 전례와 전례음악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신 : 9월 29-30일에 입학 시험이 있는 관계로 한달 간 휴면에 들어갑니다. 다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또 제 생각을 계속 나누기로 하지요. 기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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