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찬미예수님!
작성자두용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4-10 조회수574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안녕하세요? 늦었지만 부활 축하 인사드립니다. 진작 소식 전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갈려있어서 이제야 글을 쓰게 되네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한결같지 못함이 너무 힘이 듭니다. 요즘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 변화무쌍함에 새삼 스스로 놀래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 힘차고 올곧아야 할 텐데 이렇게 더디고 비틀거려서야... 아! 언제나 제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을지...

저는 성주간을 밀라노에서 지냈습니다. 아는 가족이 이번에 세례를 받게 되어서 축하해줄 겸 갔었지요. 덕분에 한국말로 전례를 하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완벽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특히 기도할 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지요. 제가 이태리에 온지도 벌써 1년 반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말이 서투르답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그저 무신경하게 지냈는데 요즘 다시 슬슬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네요. 그래서 방학 중에 다시 이태리 말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어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장례미사를 지켜보면서 그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제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올곧게 주님을 따랐던 굳은 믿음과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셨던 분, 당신을 위해 기도하러 모인 이들에게 임종 직전에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힘겹게 강복을 주실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셨던 분, 사람들을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도로서의 교황직을 새롭게 정립하신 분,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지막 말씀처럼 늘 주님 안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사셨던 분이 바로 교황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 베드로 광장(뿐만 아니라 로마 곳곳의 광장들)을 가득 메운 추모 인파야 말로 그분 삶의 위대함을 웅변적으로 대변해주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SANTO! SANTO!”를 연호할 때,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말로는 바로 “성인! 성인!” 이라고 외치는 것이지요. 여기저기 “SUBITO SANTO" 라는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즉시, 성인품을” 이라는 뜻입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최고의 명예인데, 이미 사람들이 그분을 성인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적으로 그분을 추모하며 성인으로까지 추앙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교황님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예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큰 사랑을 가지고 진심으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모두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이지요.

장례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그러하지만, 어제는 특별히 제 자신의 죽음을 진지하게 묵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죽음 뒤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감추고 싶은 추한 것들을 더 많이 남기게 될 것인가, 아니면 참으로 감사해하면서 행복해하면서 홀가분하게 눈을 감을 것인가? 이 질문은 바로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삶을 선물로 받았고 그 모든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문제는 그 삶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쪽을 기웃거리며 스스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간혹 제 정신이 들어 열심 하다가도 이내 시들해지고 또 방황을 하다가는 이래서는 안 되지 싶어 마음을 추스르고 하는 식입니다. 수도자로서의 제 신원에 대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외적으로는 이미 선택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짜 응답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라찡거 추기경님의 강론 말씀 중에 되풀이 하신 “SEGUIMI!"(나를 따라라!)라는 말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인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 말씀에 충실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사제로서 간직했던 3가지 말씀 중에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라는 말씀을 깊이 깨닫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초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사제품을 받을 때, “예, 주님!” 이라는 말씀을 모토로 삼았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지요. 어쩌면 이리도 쉽게 자신의 말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 언행의 불일치, 말과 삶의 이 극명한 부조화야 말로 바로 저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제가 만일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이 불일치를 밀고 나간다면 저는 틀림없이 후회하며 죽게 될 것입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다행히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제게 회개의 은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해야지요. 예, 흔들리는 제 마음을 거듭거듭 바로 잡기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 마음과 씨름을 하느라 축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첫 서약과 종신서약을 하신 모든 동반자 회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축하 인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셨으니 함께 행복하게 그분을 따르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서원 은경축 맞으신 바오로 수사님께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형님의 삶은 제게 큰 빛이 된답니다. 계속 우리 후배들의 빛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한마음 국악전례단원 모두에게도 축하 인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많은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하는 통로가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울러 우리 고난회 행사에 늘 함께 해주시는 한소리 합창단 단원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부활 인사를 편지나 멜로 보내주셨는데 일일이 답장하지 못하고 이렇게 인사드림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준수 관구장님과 우리 고난회 형제들, 동반자회원들, 한소리 합창단과 한마음 전례단원들, 친구들, 여러 은인 분들, 그리고 사랑하는 제 가족들 모두 제 기도 안에 늘 함께 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마태 28,1)

이 말씀은 지난 부활성야 미사 안에서 우리가 들었던 복음의 첫 구절입니다. 예수님을 잃고 애타는 마음으로 통금이 풀리자마자 그 분의 무덤을 찾아 나섰던 여인들. 이 여인들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절절이 체험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못 잊어 사랑의 응답을 드리기 위해 예수님의 시체라도 돌보려고 새벽 일찍 그분의 무덤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용감했던 행위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전혀 뜻밖에도 예수님의 시체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은총을 입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의 절망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온 마음으로 우리의 절망 안에서 예수님을 찾을 때, 그분은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슬픔에서 기쁨을, 절망에서 희망을, 자포자기에서 새로운 의욕을, 죽음에서 새 삶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몸소 죽음을 겪으신 분, 그리고 찬란하게 부활하신 분, 그 예수님을 찬미합시다. 그리고 “나를 따라라.” 하시는 우리의 주님을 따릅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의 은총을 가득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05. 4. 9. 로마에서.

강수근 신부 드림

위 글은 교황님의 장례미사를 로마에서 지켜보신 후에 쓰신글 을

                안드레아가 신부님 카페에서 퍼왔습니다.

                강수근 신부 카페 둘러보기 : http://cafe.daum.net/sugun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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