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게시판

제목 2007년 한국 천주교회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 참관기
작성자소순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9-02 조회수1,196 추천수0 반대(0) 신고
 
참고: 원고 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으며, 여전히 작성 중에 있습니다.
 
+ 찬미 예수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셨습니다. (대충 약 140여명 정도..)
 
이번 대회의 주제는 " 전례음악으로서 CCM과 국악의 가능성 모색" 이었으며
 
10시 시작기도 및 개회사
 
1. 이한택 주교님의 기조강연
 
2. 주제발표 1 (CCM, 현정수 신부)
 
3. 주제발표 2 (국악, 강영애 선생)
 
점심
 
4. 안드레아 스콜라 깐또름 (국악 연주 단체) 연주 (지휘: 김희덕 선생)
 
5. 논평 1 (CCM, 박수진 선생)
 
6. 논평 2 (국악, 배효정 선생)
 
7. 토론
 
8. 미사(성가)
 
진행: 이완희 신부 (전례위원회 총무)
 
의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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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번에 발표된 자료는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산하 성음악분과위원회의 홈페이지 자료실인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다운로드하시기 바랍니다. (2007.09.08 Update):
 
 
이 자료를 행사 진행 사진과 함께 올려 드립니다.
 
1. 이한택 주교님의 기조강연
 
매우 잘 요약된 내용인 위의 발표문(최종) 강연 원고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 주제발표 1 (CCM, 현정수 신부)
 
잘 준비된 위의 발표문(최종) 주제발표 원고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제가 느낀 점들입니다 (제안 포함):
 
2-1. 위의 사진에 있는 도표가 현정수 신부님의 발표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만, 이 도표의 내용은 CCM 혹은 생활성가의 언급이 없더라도, 평소에 전례음악이 마땅히 만족하여야 하는 필요조건들로 알고 있습니다.
 
2-2. 용어 번역과 관련하여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혹은 Contemporary Catholic Music 의 약자)
 
2006년 4월 24일자 소식에서 CCM을 "현대교회음악"이라고 번역을 하였기에, 잘못된 번역이라는 지적을 드렸습니다만,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보통명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약자인
 
CCM (Contemporary Catholic Music) 을
 
국내에서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잡은 고유명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생활성가 (가톨릭용 복음성가)로 번역하는 것이 어떨런지 하는 말씀을 주셨는데, 이것은 매우 곤란하고 또 아닌 듯 싶습니다. 왜냐하면, Contemporary Catholic Music 이라고 불리는 불특정 다수의 곡들은 세월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Contemporary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서 작년 봄에 말씀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제 6869번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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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내용 (시작)

가. 지난 4월 24일에 있었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성음악분과준비) 회의 소식

게시자 주 1: 전국 가톨릭 전례음악 봉사자들께서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발견 즉시 이곳 성가게시판에 퍼 날랐습니다.

게시자 주 2: 아래의 글에서 CCM을 "현대교회음악"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개신교 어떤 분께서 작위적으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셨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오역입니다. 즉,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개신교 성향의) 약자이지, Contemporary Church Music(현대교회음악) 이 아닙니다.

[
내용 추가: 특히 요즈음에 들어와 국내 가톨릭계에서 생활성가라는 용어 대신에 CC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듯하며, 더 나아가 그냥 좋은 생각에서 다들 CCM을 "현대교회음악"이라고 부르는 듯 합니다만, 여기에는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있기에 이번 기회에 CCM 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는 범위내에서 조금은 지루한 수준(?)의 자세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
내용 추가: 더구나, 사실은 Contemporary는 "최근의"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신적으로 새롭고 참신한" 하는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는 현대(=Modern)로 두리뭉실하게 번역하는 것도 어폐입니다. 물론, Present-day는 "극히 최근의"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Contemporary 라는 단어와 Modern 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의 차이점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아마도 이 지적이 상당히 생소하게 들릴 지 몰라도, 쉽게 말하여, "Contemporary 한 것이 대충 한 세대(즉 20 - 30년) 정도 모이면 Modern한 것"이 된다고 이해하시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Contemporary 와 Modern 단어의 차이점

 1. 우선, Merriam Webster's Ninth New Collegiate Dictionary에 의하면,

1-1. Contemporary 라는 단어의 설명이, adj [com- + L tempor-, tempus] 어원 설명과 함께  (1631) ... 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1631)은 처음 이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이 1631년이라는 설명입니다.

 1-2. Modern 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adj [LL modernus, fr L modo, just now, fr. modus, measure - more at METE] (1585)... 로 시작하는데, 이 단어는 1585년에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 년대(Dates)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위 사전의 앞부분에 있는, Explanatory Notes (제 17쪽)을 읽어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전에 있는 두 단어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므로, 다음의 사전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2. Modern Guide to Synonyms and related words 사전(출판사: Funk & Wagnalls, 저자: S.I. Hayakawa 및 Funk & Wagnalls 편집진, 출판년도: 1968)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modern, contemporary, current, present-day, recent, timely

These words refer to what is new or to what exists now. Modern suggests a historical division of time including the present and what has gone immediately before it; this can be a comparatively long or short period. [The discovery of America in 1492 demarcates medieval from modern history; Several modern schools of painting were unheard of in the 1920's.] Modern may also distinguish something in vogue from something old-fashioned, or a present period from an older one: modern furniture that looked strange against the Renaissance flavor of the room's architectural details. Like modern, contemporary may be used to refer to a historical division that includes the present, but it usually suggests a much narrower slice of time than modern: the trends in modern times that have culminated in certain contemporary attitudes. On the other hand, contemporary can suggest the mere fact of present existence, while modern can suggest something new or vital in spirit: a contemporary but hardly modern thinker. Present-day suggest an even narrower slice of time that contempory but is most often used simply as classification rather than in implying a positive or negative judgment about value: arguing that present-day taste was evenly split between modern and traditional styles. 이하 생략.
]

즉, 생활성가를 CCM으로 부르는 것은 합당하나, CCM을 "현대교회음악"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적에 대하여 간혹 아니라고 반론을 펴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CCM 약어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교회(Church)는, 개신교 교회(Protestant Church)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가톨릭 교회(The Established Church)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전에도 게시글에서 지적하였습니다만, Sacred Music(성음악)을 Church Music(교회음악) 이라고 번역하는 나라는 독일 뿐인 줄로 알고 있으며, 이것 또한 잘못된 번역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께서는, 예를 들어,  http://en.wikipedia.org/wiki/Contemporary_Christian_music (클릭하십시요)의 내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특정한 성격의 세속음악들에 대한 총칭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국내 개신교 측이 아니라) 특히 국내 가톨릭 측에서 "현대교회음악" 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전혀 아닌 틀린 번역입니다.  

게시자 주 3: 또 가톨릭 전통을 그렇게 존중하지 않는 미국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CCM을 Contemporary Catholic Music의 약어로 사용을 하기는 하나,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읽어 보시면 미국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ontemporary_Catholic_music (클릭하십시요)의 내용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게시자 주 4: 가톨릭 신앙 관련 용어 번역과 관련하여, 근본을 흔들 수 있는 틀린 번역 혹은 아닌 번역을 누군가가 작위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시도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혼란을 국내 가톨릭계에 불러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하여서라도, 발견 즉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드리겠습니다.

달리 말하여, 지금부터라도, "열성뿐인 억지춘향식 추측"에 근거한, 자의적이고 작위적인 용어 번역 혹은 가톨릭 교회 문헌의 자구 해석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참고내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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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굳이 CCM(Contemporary Catholic Music) 을 우리말로 번역하여야 한다면, "가톨릭 유행가"으로 번역할 것을 제안합니다.
 
 
3. 주제발표 2 (국악, 강영애 선생)
 
자세한 내용은 위의 발표문(최종) 주제발표 원고를 읽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에, 강영애 선생의 발표가 오늘의 백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악의 연주자로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계신 학자적 모습을 바로 느낄 수 있었던 훌륭한 발표를 해 주셨습니다. 그동안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국악의 전례음악 가능성을 위하여 꾸준히 학문의 길을 정진하고 계신 보기드문 분이신듯 합니다.
 
이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산하 성음악분과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을 하게 되어, 제도적으로 평신자들 중에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모실 수 있도록 된 것에 대하여, 우리 모두 천주께 깊이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악의 경우에 타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어쩌면 필수적이나, 이 소리가 미사 중 기도에 몰입하는 분들의 침묵을 깨드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제일 큰 문제가 되는데, 이와 직결된 장단에 대하여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양질의 주제 발표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드려 준비를 해 주셨고 또 정말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잘 해주신 강영애 선생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매년 전례음악 봉사자 대회에서 앞으로도 이런 좋은 주제 발표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안:
 
세월이 흘러 불가능해지기 전에, 각 교구별로 구전되어 오고 있는 옛 연도 가락을 녹음하고 또 채보하는 작업이 매우 시급한 싯점이라 생각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측에서 이런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인력 및 재정적 지원을 제도적으로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참고:
토착화는, 지역의 문화를 논하기 이전에, 보편교회(Universal Church)와 지역교회 (Particular Church 혹은 Local Church) 사이에서, 지역교회를 보편교회화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보편 교회를 지역교회화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미 우리들의 구원(Salvation)의 창구인 보편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머리로 하는 12 사도 (바오로 포함) 위에 세우신 "보편 교회", 그리고 이들의 후계자이신 교황님과 주교단으로 정의되는 "보편교회"를 통하여 구원이 있습니다)의 전례음악이 되어버린 성음악(Musica Sacra)와 아직은 지역 교회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음악인,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국악을 보편교회의 전례음악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저는 한국인 가톨릭 평신자가 아닐 것입니다. 일전의 글에서도 잠깐 언급을 하였습니다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생활성가와 국악성가는 그 뿌리(Root)가 전혀 다릅니다.
 
참고: 보편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4개의 핵심 문헌 중의 하나인 "거룩한 교회에 관한 교의(Dogmaic) 헌장"의 정의에 의하면, 주교님께서 이끄시는 교회로서, 지역교회는 그 존재 목적이 보편교회의 가르침을 해당 지역에 널리 선교/전교하는 데에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역 교회의 수장이신 우리나라의 일부 주교님들께서, 선교/전교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생활 성가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음악이든지 간에, 보편 교회를 향하여, 즉 보편 교회의 전례인 미사성제를 향하여 피조물인 인간들을 모으는 역할을 잘 하는 것이, 천주흠숭 경신례인 미사성제에서 전례음악적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을 자동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님에 모두들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참고:
미사성제 시작 전 혹은 미사가 끝난 후에, 타악기, 앰프, 기타, 심지어 율동을 동원하여 인간들의 마음을 흥겹게 하는 연주들에 대하여서는 저 역시 좋아하며 전적으로 지지합니다만, 미사성제 중에 기도와 침묵을 마구 깨드리는 악기들의 사용은 천주께 범하는 불경죄이므로, 피조물 누구도 시도하여서는 안되는, 즉 교황님 조차도 바꿀 수 없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몇 개의 천주흠숭 경신례 핵심 사항들 중의 하나입니다. 누구든 (개신교 신자 목회자 포함)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 점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은, 흐르는 세월과 시대와 전혀 무관한, 절대적 가치를 가진,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에 관한 지적입니다.
 
참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링크 설정된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왜 무반주 다성 성음악 (Polyphonic Chant)를 부르고 또 듣기를 원할까요? (좋은 내용의 글이니 클릭하여 꼭 읽어 보도록 하십시요).
 
 
 
4. 안드레아 스콜라 깐또름 (국악 연주 단체) 연주 (지휘: 김희덕 선생)
 
땀을 흘리면서 연주와 지휘를 하시느라 수고하신 이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위의 사진들을 잘 들여다 보시면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 육성 음역밖의 화음 제공을 위하여 피아노와 전자 오르간이 보조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2. 사용 중인 국악 악기는 부는 것 두 개 (대금과 피리 (?)), 앵금이, 그리고 뜯는 것 두 개 (가야금과 거문고 (?))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 저는 국악 악기들의 이름에 대하여서 문외한입니다만, 연주 악기로서의 독특항 음색을 가진 국악 악기들의 소리는 잘 구별하여 듣습니다. (제 특기 중의 하나가 피아노 평균율 조율입니다.)]
 
3. 특히 유의할 점은 장구, 꽹과리 등의 타악기 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이들 타악기류의 악기들이  
 
(i) 침묵과 공존하는 것이 매우 힘들거나 아니면
 
(ii) 침묵과 경쟁하는 악기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타악기 류를 연주할 때에, 여하히 기도와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어찌되었든지 간에, 국악 성가들을 전례 음악으로 사용함에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실험이, 타악기류의 개량/개선 포함하여, 앞으로 꾸준히 지속적으로 많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사성제가 본질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횡적 통공 이전에,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침묵 중에 강림하시어 우리들에게 작용하시는(Act)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 그리하여  하느님과 각 개인간의 종적 통공이 이루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5. 논평 1 (CCM, 박수진 선생)
 
위의 발표문(최종) 논평 원고를 읽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6. 논평 2 (국악, 배효정 선생)
 
위의 발표문(최종) 논평 원고를 읽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7. 토론
 
 
바쁜 일정 관계로 많은 분들께서 질문을 하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앞으로 성음악분과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하여 질문을 받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한 두 가지 지적을 드리고 싶었으나, 긴 소리(?)를 드릴 시간이 없다 싶어 그냥 꾹 참았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 중에서, 제안 사항은 위에서 두 세가지 정도를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백남용 신부님께서, 미사 중 국악 연주시에 악기 연주자들이 많이 필요한 점에 대하여 발생 경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오르간 반주 만으로도 미사 중에 국악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답변을 강영애 선생께서 해 주셨습니다.
 
국악 성가 작곡 시에 이런 점을 고려하여야 될 것이며,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가 반주 악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실질적 이유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인 듯 싶습니다.
 
8. 미사(성가)
 
 
미사 준비 모습 및 현정수 신부님께서 매우 열심히 성음악분과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 모습니다.
 
위 사진을 찍을 때에 프래쉬를 사용한 관계로, 스크린에 맺힌 그림이 보이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행: 이완희 신부 (전례위원회 총무)
 
 
끝으로, 꽉 짜여진 일정대로 진행를 잘 해 주신 씩씩하고(?) 또 유어감각도 뛰어나신(?) 이완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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