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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독 작곡가 박영희 선생님의 신작 합창 연습을 듣고....
작성자조남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1 조회수1,261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어제 재독 작곡가 박영희교수(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를 모시고 신촌 아퀴나스 합창단을 찾아 합창 연습하는 것을 참관 하고 왔다.

 박교수님은 그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제에 초청되어 몇차례 연주회를 가진바

있으나 국내보다는 유럽음악계에서 더 잘 알려진 분이다.

지난 봄 KBS 해외동포상 문화예술상 수상 뉴스에서 그의 음악을 잠깐 스쳐 지나가며

들은 적이 있으나 정식으로 음악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교수님은 이번에 두편의 신곡을 썼다. 이 곡들은 10월14일(수) 오후7시30분  한국평신도협의회 주최로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이 땅이 하느님을 노래하다”-한국 교회음악의 선각자 최양업신부께 바치는 음악회에서 발표된다.

세계 초연이다.

저명한 현대음악가가 최양업신부님을 기리는 뜻으로  종교적 작품을 써서 많은 이들이 거저 들

을 수 있다니 영광이고 행운이다.

이것은 최양업신부님께 향한 박선생님의 각별한 사랑의 마음 덕분이며, 하느님의 큰 도

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연습곡은 박선생님의 무반주 합창곡 <주님,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소서>이었다.

( 두주일전쯤 창작이 끝난 오르간 독주곡 <별빛 아래서>도 14일밤에 명동성당에서 초연된다-연주 이대 채문경교수).

지난 9월 합창곡 작곡을 막 끝낸 후 잠시 서울에 들른 선생님께 나는 최양업신부님을 현

양하는 오르간곡도 한곡 써달라고 했다.

그때 선생님은 “작곡은 그 대상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

라며 작업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셔서 오르간곡은 작곡이 안될지도 모른다고 내심 포

기하고 있었다.

악보를 보내기로 약속한 날짜가 자꾸 미뤄지면서 나는 작곡가의 그 절대의 고독이 어렴

풋이 헤아려졌고 마음이 아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혼신을 다해서 두 곡을 쓰셨다.

 최양업신부님 서품 160주년이고, 교황님이 선포하신 사제의 해이며, 하느님의 증거자 최양업신부님과 124위 순교자의 시복시성 문건이 교황청에 접수된  해에 한국교회에서 씨뿌리지 않고 ‘거저’ 거둔 문화적 수확이다.  선생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대학 시절 성두영교수의 해설로 메시앙의 음악을 처음 들었으나 이해하기가 힘들

었다.

그때로부터 한참 세월이 흘렀으니 현대음악은 얼마나 더 난해해 졌을까.

 박선생님과 함께 연습장소로 향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음악회를 위해 15명 정도의 아퀴나스 합창단원들은 지난 두달동안 이 곡과 씨름했다.

작곡자가 가까이 계시면 물어가며 할 텐데... 지휘자 신재상선생도 힘들었을게다.

궁금함이 쌓였을 게다.

선생님은 악보를 보지 않고 뒤에 앉아서 연습을 들었다.

 지휘하는 신재상씨도 조금은 긴장된 듯하다.

처음 바리톤 솔로가 부르는 4마디가 하느님을 향하는 듯 들린다. 여성들이 소리를 이어받으며 음악이 연결된다.

그러나 이 합창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우려를 버렸다.

 어렵지 않았다.

 합창하는 이들은 다소 표현이 어려울지 몰라도 아름다웠다.

 종교음악적인 색채를 띄면서도 우리 땅의 소리와 잘 어울러져 마치 영혼을 표백하는 듯

느낌을 받았다. 

음악은 지금으로부터 150~160년전, 한줄기 빛이 들어와 백성들을 수렁에서 건져내듯

하는 소리를 엮어내고 있었다.

 

최양업신부가 보낸 라틴어 서한을 근거로 한 이 작품은

“주님, 보소서, 저희의 비탄을 보시고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소서”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잊지 마소서,

 저희가 분노의 그릇이 되지 말고 하느님의 자비의 아들들이 되도록

저와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위하여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애타게 매달리고 있었다.

비탄 속에서도 주님께 희망을 놓지 않는 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 곡의 두번째 부분은 

선두주자의 노래를 다른 파트에서 따라 부르는 캐논 형식으로

“ 신부님의 편지가 산골짝의 작은 한 공소에서 다른 공소로 화답하여 최양업신부님의

영성 기도의 향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그린다”고 선생님은 해설에서 표현한다.

박선생님은 한동안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에 매달렸다. 2005년 이후 ‘겸손’을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하다가 만난 인물이 최양업 신부님이다.

각 나라의 신화를 읽고 수많은 성인들의 전기를 읽었으나 최양업신부님을 만나며 자신의 인생이 확 달라졌다고 말한다.

 박선생님의 얼굴은 투명했다. 소탈한 단발머리에 꾸밈없는 모습이다.

“내 얼굴이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내가 최고라는 생각, 지지 않으려는 생각이 얼굴에 가득 넘쳤지요. 그러나 최신부님을 만나며 바뀌었어요. ”

5년간 낮이고 밤이고 최양업신부님 서한을 읽고 묵상하며 몰입되어 살았다. 첫 작품은 쾰른방송에서 초연했다. 대 호평이었다.

 그는 지금 최신부님의 전  일생을 음악적으로 창조해 내는 일을 평생의 과제로 잡고 있다.

 

이번에 발표되는 박선생님의 또 한편의 신곡은 오르간 독주곡으로 ‘별빛 아래서’(Unterem Sternenlicht)이다. 작품 해설에서

“혹독한 박해를 피하여 칠흑 같은 밤중에, 달빛과 별빛 아래에서 깊은 산중에 산재하고 있는 공소를 다니신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하며,

 시편 116편의 9~10절(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산 이들의 땅에서. “내가 모진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되뇌이면서도 나는 믿었네)

 이 곡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힌다.

 요즘 사제의 해를 보내며 공동체와 더불어 도보성지 순례를 하는 사제들을 위한 기도로 이 작품을 쓰셨다고 한다.

이 곡은 우리뿐 아니라 사제들에게 큰 기도와 위안이 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14일의 최양업신부님께 바치는 음악회에 함께 하여 천주가사  <사향가> 로부터 최신부님을 주제로한  현대 음악까지 150~160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양하고 귀한 음악들로 선물을 받고 삶의 위안과 힘을 얻으면 좋겠다.

이 음악회는 무료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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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충남대 강사 양인용씨가 이번 음악회를 위해 정리한 작곡가 박영희선생님에 관한 소개 글이다.

 박영희는 ‘영희 박-파안’(Younghi Pagh-Paan)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이다. 성 옆에 붙은 ‘파안’은 (Paan, 琶案)은 ‘책상 옆의 비파’라는 뜻으로, 작곡가로서의 그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독일로 건너가 프라이브루크 국립음악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세계 작곡가 세미나(1978년, 스위스 보스윌), 파리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1979년)등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하이델베르크 시 선정 여성 작곡가상(1995년)을 받는 등 줄기찬 창작활동을 통해 현대 작곡계의 중요한 인물로 부상했다. 1994년 브레멘 예술대학에 임용된 것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다. 여성을 작곡과 정식 교수로 채용하는 것이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독일 브레멘과 이탈리아 파니칼레에 거주하고 있으며 브레멘 예술대학 교수로서 현대음악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활발한 창작과 더불어 각종 현대 음악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소리'(1980년), '노을'(1985년), '우물'(1992년), '지신굿'(1994년) 등의 대표작에서 보이듯 박영희의 작품세계는 한국음악과 동양적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만의 고유한 음악 어법과 소리로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청중을 감동시키고 있다.

  어머니와 종교가 자신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작곡가는 “마음을 부리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손을 놓는 음악”, “나를 비워서 곡을 쓰고 그 곡을 듣는 사람은 자신을 채우는 음악”을 쓰고자 한다. 그는 언제나 앉은뱅이책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듯이 곡을 쓴다. ‘영희 박-파안’의 또 하나의 이름, 세례명은 ‘소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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