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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의 전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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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3 조회수318 추천수0

[영혼의 음율]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의 전례 음악 (1)

 

 

서방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전례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다. 그레고리오 성가란 “서방 가톨릭교회에서 약 800년경 갈리아 지방에서 형성된 단선율 전례 성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800년 이전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에서는 어떤 성가를 노래했을까?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 음악의 발생(100년까지)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는 일반적으로 성전(Temple), 회당(Synagogue) 그리고 가정(Home)에서 거행되었다.

 

역사 안에서 세 개의 ‘성전’이 있었다. 첫째로,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약 922년경에 건축되어 기원전 587년 바빌론 제국에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되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기원전 515년에 두 번째 성전을 재건했다. 그리고 성전이 낡아 헤로데 왕이 증축했다. 이를 세 번째 성전이라 부르는데, 기원전 20년에 시작해서 서기 64년에 증축이 완공되었다.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의 예루살렘 파괴로 또다시 성전은 무너져 내렸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유다교 회당을 함께 사용하다가 늦어도 2세기부터는 독립적인 회당을 갖게 되었다. 이는 유다교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성전이 희생제사의 장소였다면, 회당은 공부와 모임의 장소였고, ‘가정’은 축복과 기도의 장소였다.

 

“그리스도교는 노래에서 태어났다”라는 의미대로 초대 그리스도교 전례는 음악을 통해 형성되고 거행되었으며 음악 안에서 종교적 가치를 드러냈다. 여기서 전례적 음악 방식은 ‘말하는 것(Speaking)’과 ‘노래하는 것(Singing)’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낭송(Cantillation)’, 즉 ‘읊조리는 것’이었다.

 

성전에서는 전문 연주자와 성악가들이 연주하였다. 트럼펫이나 소파(Sofar) 같은 악기는 사제가 입장할 때 연주하였으며, 현악기와 관악기는 합창단 반주를 맡았다. 시편을 성전에서 노래하기도 하였다.

 

회당은 기악음악이나 합창단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공부와 기도모임의 장소로서 쉐마(Shema, 신명 6,4-9)나 아미다(Amidah, 18개의 축복기도문)을 낭송하였다.

 

가정에서는 식사 전후로 축복의 노래를 불렀고 시편과 다른 그리스도교 노래도 불렀다.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의 음악적 근거는 이러하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 바오로 사도 제자의 편지, 과월절 식사(파스카 예식), 복음찬가, 그리고 100년경의 문서들이다.

 

먼저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보면, ‘그리스도 찬미가’(필립 2,6-11),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시다”(로마 10,9), “마라나 타”(1코린 16,22),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필립 4,20),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 16,27 영광송) 등의 구절들이 있다.

 

두 번째로 ‘바오로 사도 제자의 편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psalmis)과 찬미가(hymnis)와 영가(canticis)를 불러 드리십시오”(콜로 3,16),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psalmis et hymnis et canticis spiritalibus)를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cantantes et posallentes)”(에페 5,19)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로 ‘과월절 식사’ 혹은 ‘파스카 예식’은 이렇게 진행된다.

 

가장이 잔에 술을 따르고 거기에 물을 조금 섞은 다음, “포도의 열매를 만드신 주님께 복이 있을지어다” 하며 그 잔을 돌려 가며 마시게 한다. 그 후 여러 가지 실과를 혼합하여 만든 ‘카로세트’라는 것에 이집트의 귀양살이를 기억하기 위하여 쓴맛이 나는 풀잎을 섞어서 먹고, 두 번째 잔에 술을 따를 때 그 집안의 장자가 가장에게 이 축일에 대한 설명을 청한다. 가장의 설명이 끝나면 시편 112,1부터 113,8까지 노래하면서 두 번째 잔을 역시 돌려가며 마신다. 그리고 가장이 누룩 없는 빵을 집어 쪼개서 설명하고 동석자에게 분배하며 ‘카로세트’와 함께 먹게 하고, 양고기도 질라 분배하여 준다. 세 번째 잔의 술을 마시면서 시편 113,8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노래하고, 다시 네 번째 잔을 마시며 시편 114부터 117까지 노래하며 파스카의 예식은 끝나게 된다.

 

이상 노래한 시편 중에서 시편 112는 ‘할렐루야’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이 부분을 ‘할렐’이라고 하였다. 만일 파스카 예식을 이상과 같이 마치고 다섯 번째 잔을 더 들고자 하면, 그때엔 시편 118에서 137까지 노래하는데 이 부분을 ‘대할렐(Hymnus magnus)’이라고 하였다.

 

네 번째로 ‘복음찬가(Hymnus Evangelicus)’ 혹은 ‘대찬가(Hymnus Magnus)’는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 ‘시메온의 노래’(루카 2,29-32)를 의미한다.

 

다섯 번째 ‘100년경의 문서’에는 묵시 4,11; 5,6-12; 11,17-18; 12,10-12; 15,3-4; 19,1-7; 에페 1,3-10 그리고 1베드 2,21-24; 3,18-22; 1티모 3,16; 히브 1,3; 요한 1,1-16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초기 그리스도교 100년까지의 전례 음악은 ‘그리스도교 편집이 가미된 유다교 작품’, ‘유다교 원본을 편집한 그리스도교 작품’, ‘그리스도교 이전의 헬레니즘 작품’, 그리고 유다교나 다른 전통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지만 ‘순수한 그리스도교 작품’으로 구별된다.

 

* 최호영 요한 사도 신부 – 서울대교구 사제로 가톨릭대학교 음악과 교수와 교회음악대학원장, 주교좌 명동 대성당 성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22년 봄(Vol. 57), 최호영 요한 사도 신부]

 

 

[영혼의 음율] 그레고리오 성가 이전의 전례 음악 (2)

 

 

서기 100년까지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는 일반적으로 성전(Temple), 회당(Synagogue) 그리고 가정에서 거행되었으며, 초기 전례에 상응하는 전례 음악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는 아직 유다교의 한 범주로 간주되었다.

 

2-3세기에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분리되어 성장함으로써 로마제국 내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종교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1세기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오로 사도로 시작된 복음 선포는 2세기 이후에는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갈리아뿐 아니라 인도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가시적 팽창은 때로는 로마제국과의 갈등과 박해를 낳기도 하였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될 때까지 ‘교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는데, 중앙 집중적인 체제보다는 여러 지역 공동체들의 신앙적 교감이 교회 조직의 기본적 구조를 형성하였다.

 

 

100-313년의 그리스도교 전례

 

이 시기의 기본적 전례 공간은 신자들이 거주했던 집을 중심으로 한 가정 교회(The House Church)였고, 이와 더불어 지하 무덤(Catacombs)을 고려할 수 있다.

 

‘가정 교회’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예식의 기본적 장소였다. 신자들은 주거 공간을 빌려서 임시로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주택을 개조하여 고정적인 전례 공간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Ecclesia)라는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esia)’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한 장소에 모이는 특정한 ‘공동체’를 가리켰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신자들이 모이는 장소 혹은 건물 자체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지하 무덤’을 교회에 대한 박해로 인한 전례 공간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지만, 사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전례 공간이 박해로 인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박해 시절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전례를 거행하던 곳은 지상이었고 또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알려져 있었다.

 

네로 황제(54-68 재위) 때 로마에서 국한적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재위) 때 로마에서, 트라야누스 황제(98-117 재위) 때에는 소아시아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 재위) 때 리옹에서 박해가 있었다. 데치우스 황제(249-251 재위)는 로마제국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 재위) 시대에도 유사한 박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박해는 짧은 시기에 지엽적으로 발생하였다.

 

이 시기 전례 음악의 특징으로는 먼저, 다른 민족들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반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악기보다 ‘목소리’에 의지하였다. 이것은 악기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악기들이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용도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전례를 위해 별도로 ‘음악가’를 구별하지 않았다. 전례 자체가 음악적이었으며, 전례가 공동체 전체에 속한 것처럼 음악 역시 공동체에 속했기 때문이다.

 

 

전례 음악의 구별

 

먼저, ‘성경 낭송’과 ‘기도’로서, 낭송(Cantillation)과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아멘(Amen)이라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성경 낭송은 1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2세기에는 그리스도교 전례의 기본 방식이 된다. 이는 성경을 낭송하는 방식인데, 유다교 회당에서 시작하였지만 그리스도교의 발전에 따라 유다교로부터 구분되어 결국 그리스도교 전례의 고유한 구성요소가 된다. “‘태양의 날’이라고 불리는 날, 도시와 주변에 사는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글을 읽는다(낭송한다). 낭송이 끝나면, 대표자가 나서서 이 말씀들을 되새길 수 있도록 격려한다.”

 

‘기도’ 역시 낭송된다. 이는 회당에서와 같이 즉흥으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해서 공동체는 “아멘”으로 응답한다.

 

두 번째로 성경적 시편과 비성경적 시편(Psalmi idiotici)이 전례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시편을 노래하였다는 확실한 단서는 2세기 말에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빵을 나누었으며… 다윗의 시편과 찬미가를 노래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us) 역시 이렇게 증언한다. “성경을 낭송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시편을 노래하고 강론을 들으며 기도를 드린다.”

 

일반적으로 시편을 독창자가 노래하면 공동체가 응답한다. “한 사람이 시편을 낭송하면 모두가 알렐루야로 응답한다”(사도 전승 25). 또한 ‘아멘’ 역시 응답을 위한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3세기에 시편은 그리스도교 전례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되는데, 성경적 시편과 더불어 비성경적 시편도 전례에서 노래된다. “나는 나의 손을 벌려 나의 주님을 찬미하니, 나의 손을 벌리는 것이 그분을 상징하는 것이며 올바른 나무이기 때문이다. 알렐루야”(솔로몬의 노래 27).

 

세 번째로 찬미가(Hymnody)는 2세기 중반부터 작곡되었다.

 

“정해진 날 새벽에 모여, 하느님께 하듯이 그리스도께 서로 교대로(alternatim: 교창) 노래(Carmen)를 불렀다”(소아시아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 X,96).

 

찬미가에서 하나의 연(Strophe)은 2행 이상으로 이루어졌고, 연은 규칙적인 운율과 리듬을 갖기에 각 연을 같은 방식으로 노래할 수 있다.

 

이러한 찬미가는 공동체 전체가 노래함으로써, 주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일치를 강조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이렇게 권고한다.

 

“주교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여러분들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고, (악기) 키타라와 그 줄(현)처럼 주교와의 연대를 이룰 것입니다. 여러분인 보이는 사랑의 일치와 화합 안에서 그리스도는 찬미 받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노래로 하나 됨으로써, 여러분은 일치하여 노래하고, 노래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멜로디)를 들으며, ‘하나의’ 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찬미를 드리게 됩니다”(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5,1-2).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22년 여름(Vol. 58), 최호영 요한 사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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