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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잠원라우다떼복음묵상(대림제3주일)
작성자이봉섭 쪽지 캡슐 작성일1999-12-13 조회수980 추천수2 반대(0) 신고

대림 제 3주일, 잠원본당 라우다떼성가단 복음묵상시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2월 12일 대림 제 3주일(자선 주일)

제 1 독서 이사야 61,1-2ㄱ.10-11(주님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제 2 독서 데살1 5,16-24(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복     음 요한 1,6-8.19-28(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준비 및 진행 : 김지성 스테파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럼, 복음을 읽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서, 1장 6 - 8.19 - 2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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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증언을 듣고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8 그는 빛이 아니라 다만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이 때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20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그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분명히 말해 주었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다시 묻자 요한은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예언자요?” 그들이 다시 물었을 때 요한은 그도 아니라고 하였다. 22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해 줄 말이 있어야 하겠으니 당신이 누군지 좀 알려 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렇게 다그쳐 묻자 23 요한은 그제야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 하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오.” 하고 대답하였다. 24 그들은 바리사이파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은 또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26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다만 물로 세례를 베풀 따름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 27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이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다니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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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물로써 세례를 베풀어 군중들에게 주님의 뜻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닌가하고 혼동을 합니다. 유다인들은 사람을 보내어 ’이 사람이 누군가?’하고 묻기까지 합니다. 이 물음에 요한은 놀랍게도 자신은 위대한 예언자도 아니고 다가올 메시아도 아니라고 합니다. 게다가 ’나는 이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몸이오.’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신을 따르는 군중에 현혹되어 자신을 메시아라고 착각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기까지 한 요한의 모습을 보면 요한이라는 인물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 요한이 한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자이며 곧 요한입니다. 저는 저같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당에 나오고 성가대에서 성가로 미사를 봉헌하고... 이런 것들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있고 요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세례를 베품으로서 다가올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우리들은 주위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품으로서 다가올 성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탄의 가치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과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일생생활에 쫓겨서 그리스도를 잊고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2주도 채 남지 않은 성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대림시기를 흔히 기다림의 시기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누구는 방학할 날을 기다리고 있고, 성적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테고, 결혼할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이 설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불안하게합니다. 성당에 나오는 것은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처음 성당에 나올 때의 순수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일요일마다 귀찮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나 자신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덤덤해진 것 같습니다. 성당에 나오는 것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에, 또한 정작 미사보다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성당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성당에 나와서 미사를 보는 것은 단지 핑계에 불과한 것같은... 가까운 사람일 수록 그 사람에게 소홀해진다고 하지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가하십니까?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대림시기에 나의 기다림이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순된 말같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변화가 지금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로 세 번째의 촛불이 켜집니다. 세 번째의 촛불을 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그 동안 너무 가까운 나머지 소홀했던 사람들과, 혹시나 잊고 지냈을지 모르는 우리의 신앙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하겠습니다. 그럼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분간 묵상-

 

  저는 깨닫고 있습니다.

  저의 기다림이 허황된 것이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날의 희망은

  결코 나를 만족시켜주는 나만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의 탄생을 바라보며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낯설어 하고 심지어 부정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오가

  지금 저에게도 그대로 이어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새로운 구원의 때를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나에게 익숙한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져다 주신 희망의 약속은

  우리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달콤한 느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할 수 있게 되는 우리 자신의 변화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승주 신부님의 강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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