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 하느님의 뜻과 정신에 맞는 경제활동 우리는 신학이 하느님에 대한 학문이고, 신학을 배운다는 것은 어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쁘게 달려가고,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세상에 둘도 없은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안에서 신학의 의미를 살피고 찾아내 하느님을 조금씩 더 깊이 배우고 알아가는 여정에 나설 것입니다. 신학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내어 모시는 학문이라면 지레 겁먹을 필요 없겠죠. 우리는 이 여정에서 특별히 경제라는 영역을 먼저 들여다볼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 가운데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 세상의 많은 문제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제를 둘러싼 문제는 생각보다 광범위하여 의식주(衣食住)와 함께 문화, 역사, 오락, 취미 등 대부분의 인간의 행위가 경제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경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신학과도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경제 문제는 실천적인 인간 삶을 다루는 윤리신학과도 밀접하고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경제 문제가 윤리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물질, 자연, 환경이 인간생활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얘기한 ‘데나리온’으로 표현되는 돈이나 금력(金力), 나아가 세속의 권력 또한 인간으로부터 비롯되고 인간을 위해 생겨난 것이기에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 일상에서 부딪히는 선택의 기로에서 하느님의 뜻과 정신을 바르게 선택하는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안목과 행위는 상식적인 인간과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경제란, 나아가 경제 윤리란 무엇일까요? 라틴어로 오에코노미아(Oeconomia, 경제, 經濟)는 사람이 재화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즉,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는 달리 양이 한정되어 있어 매매나 점유의 대상이 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해서 소비에 이르는 모든 인간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 28)는 성경의 첫 장을 읽을 때, 이 말씀에서 땅(자연자1원)이 바로 인간의 지배(노동)를 통해서 인간 자신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자원은 지상과 지하, 해양과 우주 등에 여러 모습으로 무한하게 펼쳐져 있지만, 매우 제한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자원들 또한 지극히 단순한 형태일지라도 자연과학의 연구와 개발, 지혜와 노동을 통해서 인간에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머릿속으로 과거의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수십 억 년에 걸쳐 이 지구에서 살다간 무수한 생물들 가운데 실제 지구에 지배력을 행사한 존재가 있었던가요.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생존해온 시간이 350만 년이라고 할 때 1억5000만 년이라는 엄청난 기간 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공룡이 과연 지구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롯이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만이 자신의 노동과 얼이 담긴 경제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 이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땅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노동, 정신, 영성을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만이 참다운 의미에서‘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5월 8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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