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 형제적 결속 · 연대로 가난 극복해야
가난한 이들 편에 설 때 그리스도적 정의 실현 가난의 문제는 이제 몇몇 개인이나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 온 인류의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더욱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경제적 발전과 도약을 이루고 있는 오늘날 가난의 문제는 인류의 존립,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고 배려하신 인간 존엄성의 존립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에서, 태어나 세상에 발을 디뎌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가녀린 생명, 철없이 뛰놀아야 할 어린 나이에 혹독한 노동으로 내몰리는 저개발국가의 미성년 어린이, 노예와 같은 노동에 혹사당하는 여성노동자, 비위생적이고 열악하기 그지없는 노동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품위라고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노동현장에서 영육이 지친 수많은 노동자 등 결국 호구지책을 해결하고자 빚어지는 질식할 것만 같은 노동현실의 부조리와 비인간화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참담한 노동현실에 침묵하고 계시는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수십 년의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오늘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난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결 방안에 대해 밝은 전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가난이 어느 개인의 사고와 이해, 실천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이며, 따라서 형제적 결속과 연대를 통해 극복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하여 그 정신과 전통적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서 교회는 복음적 가난의 영적 가치와 실천과제에 새로운 힘과 희망, 숨결을 샘솟게 하였는데, 이른바‘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인 선택’의 의미를 높이 들어올린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인류가 극복해야 할 상황을 전제로 해서 나온 메델린과 푸에블라 문헌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1년 뒤 개최된 ‘남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메델린 문헌(Medellin Conclusiones)」은 1968년 8월 24일부터 9월 6일까지 콜롬비아 보고타와 메델린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단 총회가 내놓은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델린 문헌에서는 교회의 가난, 정의, 평화라는 주제를 통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연대를 맺을 의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푸에블라 문헌」으로 이어지면서, 이때부터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개념이 전면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신구약 성경과 초세기 교회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늘 가난한 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인권을 박탈당한 이, 여러 이유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복지활동을 중단없이 지속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교구는 사회복지회, 혹은 사회복음화국 차원에서 이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위의 문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사목적 배려를 통해 교회가 부정과 부패, 불의의 문제에 대해 강력한 예언자적 자세를 취하도록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가난의 문제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 물질적 가난과 비참한 상황이 인간과 단체, 그리고 한 계층의 이기주의적 욕망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가난한 이들 편에 설 때, 그리스도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행복과 평화, 바람직한 자기성취와 만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며, 인간의 진정한 품위와 존엄성이 제자리를 찾도록 인류를 위해 온전히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 복음의 가치를 따라 친교와 나눔과 섬김의 삶에 충실하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6월 26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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