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9) 그리스도적 감수성으로 본 세계화
교회 생활 전반에 새로운 삶의 규율 요구 우리 주변에서 감수성(感受性)이란 말이 다양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거나 감수성이 예민하다, 청년 같은 감수성을 지녔다 등과 같은 말처럼 어떤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도 쓰이고, 대중적 감수성, 문화적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과 같이 어떤 흐름이나 트렌드를 말할 때도 자주 쓰입니다. 이렇게 쓰이는 감수성이란 말은 간단하게 말해서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을 말합니다. 달리 말해 내외계의 자극변화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자세 내지 능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서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돋보이게 되는 게 보통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적 감수성을 지니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肉化)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결국은 인간적 감수성으로 인류에게 당신의 지극하신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눈으로, 곧 예수님의 사상과 의지, 관점으로 세상에 다가서려 노력할 때 그리스도적 감수성이 풍부해지리란 점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늘 가까이 하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진리대로 살아가려 노력할 때만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주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 바로 그리스도적 감수성도 주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값지고 은혜로운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감수성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다양한 문제와 의제를 던지고 있는 세계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세계화를 둘러싼 문제들은 경제와는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범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의 조류는 정치와 사회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 경제적인 면 등 모든 측면에서 국제 질서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이념적 토대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결코 어떤 신념이나 제도 등으로도 되돌리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지구촌의 흐름이 된 지 오래인 듯합니다. 세계화는 따라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삶, 단지 영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선 인간 삶의 모든 부문에 대해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는 가톨릭교회에 있어서도,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현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빚어내고 있는 국제 질서와 국가 및 사회의 모든 면에서의 질적이고 양적인 변화의 양상은 가톨릭교회의 사목과 신앙, 교회 생활 전반에 광범위하고 폭넓은 변화와 새로운 삶의 틀과 규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세계화는 교회의 모든 사목 정책과 사목적 실천과 영적인 배려와 돌봄에 있어서 더 깊은 고민과 연구의 대상과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으며, 향후 십수년 이후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전망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적 감수성으로 바라볼 때,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세계화의 흐름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과 이로 인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일로를 걷고 있는 소외계층을 품고 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가톨릭교회는 오래 전부터 세계화가 야기할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해왔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0년대 후반부터 교도권에 바탕을 두고 발표하는 각종 문헌들에서는 물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화의 문제에 대한 우려의 뜻을 피력한 것은, 이 문제가 매우 중대한 사안이며,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와 그 지역교회 안에서 교회가 맞닥뜨려야 할 사목적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표명되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7월 10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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