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8) 죄와 벌
일곱 번 죄도 여덟 번 용서하시니 -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의 타락과 공동체의 죄상을 다룬 것이다. 그림은 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바벨탑'. 우리는 성경에서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의 죄와 그런 인간을 변함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만난다. 이는 우리 삶의 역사에서도 재현된다. 창세기 태고사를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하느님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의 죄 창세기 3장에 최초의 사람과 그 아내가 저지른 첫 번째 범죄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과 그 아내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는다. 하느님께서 선악과만은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은 인간이 무엇이든 자유의지대로 다 할 수 있어도 하느님 명령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4장에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두 번째 범죄 이야기가 나온다. 형 카인은 하느님께서 양치기인 아벨의 제물을 더 굽어보시자 아벨을 시기하여 살해한다. 그래서 카인은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삶을 벌로 받는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다른 이들의 살해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받을 표를 찍어 주신다. 이 표는 엄청난 죄를 지은 카인을 여전히 돌보시고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자비, 용서의 표이다.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았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 공동체 전체의 죄상(罪狀)을 말한다. 하느님은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고, 홍수로 타락한 인류를 쓸어버리셨다. 또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으셨다. 하지만 죄와 벌을 이야기하는 성경 말씀은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통해 이뤄지는 구원과 함께 전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창세기 태고사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역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성찰하기 위해 최초의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지은 죄를 설화양식을 빌어 기록했다. 둘째, 인간의 죄를 죄 자체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 구원과의 상관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 셋째, 태고사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면 마치 인간 죄의 원인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실상 인간 죄의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 부여받았으므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죄에 대한 가르침 죄는 하느님과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인간 공동체를 거스르는 삼중적 차원을 갖는다. 죄는 우선 원죄와 본죄로 구분한다. 원죄는 최초의 사람과 그 아내가 지은 죄가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쳐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죄라고 이해된다. 반면, 본죄는 자기 자신이 동의해 저지른 죄이다. 아울러 대죄는 인간이 완전한 인식과 자유의지의 동의로 하느님 뜻과 반대되는 중대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소죄는 일반적으로 하느님 법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이나 불완전한 동의로 불순종한 것이다. 이웃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하느님을 배반한 대죄를 범한 사람은 고해성사 때 자세히 고백해야 한다. 대죄를 용서받으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하지만 소죄는 하느님 은총을 잃지 않을 정도의 죄, 즉 용서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이므로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나 영성체로도 용서받을 수 있다. 인간의 회개와 하느님 은총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죽을죄를 범한 경우라도 '회개'한다면 다시금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회개란 하느님과 그분 뜻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다. 인간 영육의 차원, 내외적 차원 모두를 포함하는 전인격적이고 전존재적 행위다. 그런데 인간이 회개하려면 먼저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기에 용서를 청할 때 회개의 은총도 함께 청해야 한다. 회개는 하느님 선물이다. 이 선물은 하느님 은총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 그분 은총에 마음이 열려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인간은 죄를 지었더라도 다시금 회개하는 삶을 통해 참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다. [평화신문, 2011년 7월 24일,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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