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가톨릭교리] (11)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몸소 보여줘 -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고치신 기적을 그린 '예리코의 소경'(니콜라 푸생 작,1650년).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하는 동안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 곳곳을 다니면서 수많은 행업의 발자취를 남기셨다. 기적 활동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구원 의지와 능력을 드러내고,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계시자'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기적은 '표징'으로서 자리한다. 1) 치유 기적 예수님은 나병 환자, 중풍 병자, 하혈하는 부인, 귀 먹고 말 더듬는 이, 벳사이다의 눈먼 이 등을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인데도 시몬의 병든 장모, 손이 오그라든 사람 등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단지 아픈 몸만이 아니라 병든 마음까지 치유해주셨다. 이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치유 기적을 행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치유된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고 말씀하신 데서 살펴볼 수 있다. 2) 구마 기적 예수님은 안식일에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셨고, 게라사인들 지방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이와 더러운 영이 들린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딸을 치유하셨다. 우리는 구마 기적을 통해 인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업에 힘입어 죄나 악의 힘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죄나 악은 마귀나 사탄 또는 더러운 영이 아닌 온전히 인간의 인식과 자유 의지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3) 소생 기적 예수님은 회당장의 어린 딸, 과부의 외아들, 베타니아 마을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형제 라자로를 살리셨다. 이는 당신 자신이 부활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알려주신 것이다. 4) 자연 기적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물독 여섯 개를 물로 채우고 이를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도 넘는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이 모든 자연 기적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엿보게 한다. 5) 성경에 나타난 기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 고대인들은 기적을 신들이나 영들의 권능과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 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신들과 영들이 아닌 하느님의 권능과 현존을 더 뚜렷하게 감지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신약의 기적들은 구약의 기적들과 연관성을 갖는데, 신약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역사(役事)하신다는 결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 기적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하느님 구원 행위의 표징으로 이해하는 괄목할만한 사건들'을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이란 '결정적 구원의 약속을 알려주고 그 약속이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 정화 예수님은 성전을 하느님 아버지 집이자 기도의 집으로 거룩히 여기셨다. 당시 성전에는 환전상과 장사꾼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그들 행태에 분개해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당신의 몸, 곧 성전이 십자가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삶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와 굶주린 이, 세리와 창녀들, 당시 사회에서 죄인들로 취급됐던 병자들, 존중받지 못했던 어린이와 여자들, 특별히 고아와 과부들을 가까이 하셨다. 예수님은 사랑이신 하느님, 선한 사람들뿐 아니라 악한 사람들까지 품으시는 자애로우신 하느님, 의인들보다도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느님,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당신 전 생애를 통해 증거하셨다.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는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사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다. [평화신문, 2011년 8월 21일,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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