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2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성령 체험 : 성령 하느님
항상 성령이 함께 하셨음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성령 체험을 했다. 깊은 성령 체험을 했던 초대교회 사도들 이야기는 사도행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해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그 사건을 되새기고 있다.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는 아버지의 모습, 성자는 아들의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는데, 성령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야 할지 막막하다. 성경에서 성령은 비둘기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비둘기는 매우 상징적 표현이다. 도대체 성령은 어떤 분이실까. 제자들은 어떤 분으로 체험했을까.
구약성경에서 살펴보면 성령은 바람, 숨, 생명, 영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창세기를 통해 성령 활동을 이해할 수 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고 서술하고 있다. 마치 위대한 작가가 대작을 구상할 때 떠오르는 영감과도 같은 느낌이다.
가끔 우리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하느님 은총을 회상하게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문득 예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사도들의 성령 체험을 통한 성령 이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이제 더 이상 주님을 배반하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사도로 변신하게 된 것을 성경은 성령의 힘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들을 체포하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다음 바오로 사도로 변신한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또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7가지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이미 선사된 것이지만 완성된 소유물일 수 없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의 자연적 삶과 비슷하다. 우리의 자연적 삶도 한번에 영구히 주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매순간 새로워지고, 새롭게 선사됨으로써 비로소 우리 삶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성령의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또 바오로는 자신의 삶이 바로 성령의 은총이라 고백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위험과 박해, 어려움을 다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은총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총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인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용서의 능력 주시는 성령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죄를 용서받고, 용서하는 능력을 선사하는 분이시다. 죄를 용서받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가장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고해성사만 보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아주 쉽고 흔한 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죄는 고백 때문에, 보속 때문에 사해지는 게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회개하는 마음을 보고 용서하신다. 고백은 뉘우치는 마음의 한가지 표현일 뿐이다.
사실 죄가 용서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죄 때문에 아파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죄가 용서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다음 생에도 갚지 못하면 다시 또 태어나 갚아야 한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용서할 수 없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원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은총의 명령이다.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게 하시는 성령
성령의 은사로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 언급되곤 한다. 가장 중요한 언어는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언어다. 하느님 말씀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으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들 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느님 은총으로 받고 있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 나의 얼굴, 피부, 재산, 부모, 형제, 친구, 능력, 건강…. 어떤 것이 내 것인가. 내 마음은 과연 내 것인가.
어느 개미와 코끼리가 흔들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다 지난 다음 개미가 동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야! 내가 다리를 지나가니까 다리가 막 흔들리더라구." 우리는 그 개미처럼 마치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한 것처럼 잘난 체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의 어려웠던 순간들을 기억해보자. 내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우리와 함께 건넜기에 다리가 흔들렸던 것은 아닌지….
어려울 때마다 코끼리보다 더 큰 하느님 은총이 함께하셔서 오늘의 내가 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하느님의 성령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깨달음조차 성령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20일, 정리=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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