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2) 부(富) · 금력(金力) 따른 새로운 신분제 출현
인품 · 학식 아닌 학벌 · 재산 따위로 인물 평가해
마태오효과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기괴한 모습의 사회상을 세상에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부(富)와 금력(金力)에 따라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신분제가 우리 사회에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품이나 학식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가 된 듯하고, 오롯이 그 사람이 지닌 학벌, 재산, 지위, 능력, 수입 등이 판단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지닌 재력에 학벌까지 다음 세대가 물려받다 보니‘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대학 등록금 문제로 불거진 반값 등록금 논란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 외에도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대학에, 또는 대학 졸업장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대학에 가야만, 대학 졸업장이라도 있어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고가 구조적으로 우리 사회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대학 등록금 문제는 단순히 대학교육 차원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이 문제를 통해 표출되는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등 노동 현장에서 용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의 사례가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가난한 부모를 둔 대학생들이 자신을 둘러싼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한 대학, 그 대학에 다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경쟁하거나 반목해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 아버지, 형 같은 이들과 싸워 번 돈으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처지가 참담하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저 돈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어느 용역 아르바이트 학생의 고백은 과연 우리 사회의 사실적 폐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등록금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정리해고, 청년실업, 용역노동 등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노동 현실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이러한 난맥상들은 통상적인 공교육과정을 충실히 밟아 기업이나 시장이 원하는 수준의 능력을 갖춘 인적 자원들이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일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고 제시하는 정상적인 과정을 착실히 밟아온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노동자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못하는 한, 대학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학 졸업이 인간의 품위, 정당한 노동자의 대우, 향후 가정과 미래를 보장하는 불가피한 도구요 과정이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과도한 사교육과 무한경쟁, 대학입시의 끝도 없는 싸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올해 대학 진학률은 83.8%로 지난해 82.8%보다 1%포인트 올라 역사상 최고를 경신했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의 대학 진학률이 50% 안팎인 것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이는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유럽과 북미의 나라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좀 더 선명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사회가 오랜 경제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이들 나라에서는 취업 스트레스로 앞길이 유망한 젊은이나 한 집안의 가장이 갑자기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 당했다고 당장 목숨을 끊는 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사회안전망 구축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태오효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생겨나는 파괴적인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해서는 이를 극복할 새로운 제도와 정책이 요청됩니다. 따라서 마태오효과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불평등을 제거하고 순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등 공공부문의 개입이 필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11월 20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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