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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이야기24: 삼위일체 하느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11-28 조회수4,898 추천수0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 (24)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 신비는 사랑


가톨릭 신자의 특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경을 외우며,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으로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점은 하느님이 성부ㆍ성자ㆍ성령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또한 하느님은 성부ㆍ성자ㆍ성령 세 위(位)로 계신다고 가르친다. 기본 수학 원칙도 벗어나는데 어떻게 이것을 믿으라고 하는가.
 
교회는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느님에 대해서만 이해하고 말할 뿐이다. 성경은 분명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자도, 성령도 성부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 것일까.


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성경 말씀

성경은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의 관계를 진지하게 언급한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요한 10,25),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하느님이야말로 초월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한 분이시며 세 위가 되신다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인간에게 끝까지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인간의 지성으로, 노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만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사실 인간이 파악할 수 있다면,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것처럼 그 존재는 이미 하느님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이해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하느님이 아닌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생각에 속았을 뿐입니다"(「하느님의 백한 번째 이름」).

우리 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없지만 성경은 삼위를 언급하고, 교의신학은 성경을 바탕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한 교리를 정립시켰다. 성령은 믿음 안에서, 그리고 교회 체험과 우리 체험으로 확인되는 분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일치의 모형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치의 원인이요, 모형이요, 그 바탕임을 보여준다(「교회헌장」 2~4항 참조). 오늘날 남북이 하나되고, 부부가 하나되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고 인류가 하나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성부ㆍ성자ㆍ성령이 세 위로 계시면서도 한 분 하느님을 이루는 삼위일체 신비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우리가 하나로 일치해야 하는 이유이자 좋은 모델이다.

또 인류, 민족, 가정,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바탕임을 삼위일체 하느님이 말해준다. 나무와 나무는 못으로 하나를 이룰 수 있다. 종이와 종이는 풀로 하나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부부가 하나되고, 남북한이 하나되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는 끈은 사랑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보여준 사랑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삼위일체 신비는 사랑의 신비다.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의 탁월한 설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가? 아니, 하느님은 사랑일 뿐이다. 내게 그분이 전능하시다고 말하려 하지 말라. 하느님은 무한하신가? 아니, 하느님은 사랑일 뿐이다. 내게 다른 말을 하지마라. 하느님은 지혜로우신가? 아니다….

당신이 내게 묻는 모든 질문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 아니, 하느님은 사랑이실 뿐이다.' 하느님이 전능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지배나 파괴로 행사될 수도 있는 힘을 배경막처럼 둘러놓은 일이 된다. 파괴하는 데 강력한 힘들도 있는 것이다. 육백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에게 가서 물어보라.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느님에게 이러한 전능함을 배경처럼 치장시킨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이는 틀린 말이다. 하느님의 전능함은 사랑의 전능함이다. 바로 사랑이 전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하느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하느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사랑일뿐이기 때문이다."
 
터키, 이집트에서 아이들 수천 명에게 학교를 세워주고, 학대받는 여성들 권리를 일깨워주며, 종교의 벽을 넘어 화해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한 임마누엘 수녀가 100살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다 살고 난 다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저는 여러분 곁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랑의 하느님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 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사랑의 불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의 불꽃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구하는 불꽃이며, 생사의 의미를 부여하는 불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신비이지만 나는 그 신비를 체험했고, 그 신비를 통해서 살았습니다. 나의 친구인 독자 여러분을 위해 저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여전히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계절이라고."

사랑이야말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 선물이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27일, 정리=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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