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3) 학문 대신 ‘스펙’에만 몰두하는 대학 현실
노동 유연화정책 · 대학 난립 등이 청년실업자 양산
마태오효과 때문에 일어나는 불균형 심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청년실업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청년실업 문제는 바로 오늘의 문제일 뿐 아니라, 곧 닥칠 가까운 미래의 문제이기도 해 그 심각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자 취업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취업난 때문에 생기는 일이겠지만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편법을 써서라도 취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대한 평가가 학문적으로 이룩한 성과와 가치에 대한 평가보다는 대졸 취업자 수효라는 양적인 면에만 치우치는 측면으로 가고 있기에 매우 불편하고 우울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2011년 9월 현재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은 11.3%로 정부가 발표한 공식 전체 실업률 3%를 한참 웃도는 수치입니다. 불완전고용상태에 있는 취업자가 청년층에 특히 많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고령화사회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결국 고령화사회의 복지를 책임질 세대인 청년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두렵고 암담한 일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청년실업 문제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용자들이 당연시 해온 구조조정이라는 칼날과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이 시장에서 지배적인 흐름이 된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바라는 대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된 결과 사용자들은 대졸 신입사원에게 연봉 삭감과 함께 저임금 인턴 계약, 단기고용계약 등 불완전 취업을 메뉴로 제시해 놓고 선택하라고 옥죄고 있는 형국입니다. 또한 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정에서 투자해온 가치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제시해놓고, 마치 요즘 젊은이들이 배가 불러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것처럼 몰아가는 여론도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청년실업 문제의 이면에 대졸자 과잉공급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11년 대학 입학생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83%에 달하였습니다. 이는 선진국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인데, 졸업생을 수용하는 기업의 수요가 부족하니 실업문제는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렵습니다. 국가, 사회, 기업이 연계하여 구조적이고 혁신적인 정신운동이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정부와 정치인만이 풀어야 할 숙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제가 생기기까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당사자인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90여 개의 대학 설립을 허용하고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 대학 진학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선도한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1995년)을 성공한 정책으로 자부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업가들은 여전히 현재의 실패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학과 청년들에게만 떠넘기고 자신들은 불완전 취업에 안주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회적 비판에는 귀를 닫은 채, 시장주의의 불가피성만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의 취업의 질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업계의 잘못된 채용 태도를 방기하면서 대학에게만 취업률을 제고하라고 몰아붙이는 정부의 태도는 바른 재목을 키우는 교육의 본질마저 호도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현재와 같은 식의 채용 풍토가 지속된다면 대학교육에서 학문 탐구와 창의적 사고의 계발은 사라지고 수업 대신에 입사를 위한 스펙 관리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결국 다음 세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문이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참 진리에 바탕을 둔 삶의 정신적인 토대들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바로 양심, 윤리, 정직의 원천인 절대주 하느님의 숭고한 정신을 망각한 채 세상이 경제제일주의를 중심으로 표류하는 모습을 막아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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