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7)
한 · 미FTA, 양극화 심화의 ‘늪’
한·미FTA(자유무역협정)로 인한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의 자유화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의 전 영역을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지난 2004년 7월 미국이 호주와 체결한 FTA의 경우를 보면, 그 포괄범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농산물, 제약, 국경을 초월한 서비스, 금융서비스, 전자상거래, 투자,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 분쟁해결 절차 규정, 노동, 환경 등 그 범위는 국민경제의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과 국경만 달리할 뿐 경제적으로 같은 나라나 다름없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한 경제적 논리로만 보더라도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사국들 수준이 비슷하면 양쪽이 이득을 볼 확률이 높지만 한국과 미국같이 격차가 큰 경제권이 합쳐지면 작은 쪽이 경쟁으로 인해 불이익도 많이 받게 되고 파산에 이르는 분야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부분이 많은 우리 국민경제에 FTA로 인한 다른 충격요인이 발생한다면 그 파급력은 매우 위험한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은 현재로서는 예측조차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시간을 두고 FTA가 우리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피해는 최소화하고 국가경제에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체결되길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한·미FTA는 비록 경제 영역에서 일어난 문제이지만 그 영향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회의 양극화와 더불어 갈수록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양극화도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예만 보더라도, 이전까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 자영업을 하던 중산층 신자들이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더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미국 기업들이 진출한다면 그 결과는 파탄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노동과 사회복지 분야에 미칠 여파도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우선 국내기업을 인수한 외국인 투자자는 고용승계 의무, 내국인의 일정비율 고용 의무, 노동기본권의 보장, 환경기준의 준수 의무 등으로부터 사실상 자유롭게 됩니다. 또 경로우대 제도 등 사회복지 차원에서 국가가 규정한 의무사항들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외국 기업이나 자본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오면 올수록 노동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복지 수준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것입니다.
이처럼 한·미FTA는 경제적 득실에 머물지 않고 개개인의 생활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나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 개방된 시장은 이전으로 돌릴 수 없게 한 래칫조항(역진방지)은 공공정책에도 적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의 경우 협정에는 ‘73일 이상’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 정부가 60일로 축소하고 나면 나중에 다른 사정이 생겨 조정의 필요성이 생기더라도 원래의 73일로 복원하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경제자유지역 내 영리병원 허용이나 공기업 민영화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결정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이 판 늪에 빠지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이나 교회에도 돌아오게 됩니다. 따라서 너무나 거시적인 담론이어서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둘러싼 이웃과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판단과 대처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찾아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월 15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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