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28) 에이브러햄 링컨과 자유무역
예수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장려하게 되면 모든 경제부문의 우리 노동자들도 유럽에서처럼 노예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보호무역을 역설하는 이러한 주장을 내놓고 강하게 지지한 사람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으로 칭송받기도 한 이 같은 링컨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요즘 시대를 잘못 읽어낸 정치지도자의 치명적 실수로까지 오르내립니다. 어떤 이는 링컨 대통령의 이러한 정책이 그가 범한 가장 큰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인지는 되새겨볼 문제입니다. 링컨 대통령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어떤 위대한 사람의 시의적절한 판단이나 발언도 상황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링컨 대통령의 발언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를 본다면 그의 발언을 앞뒤 딱 잘라 시대착오적인,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한 결과였다는 비판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재임하던 19세기 당시 미국은 기술력이나 경제력 등 많은 부분에서 유럽에 비해 한참이나 뒤처져 있었습니다.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유럽의 여러 나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자체적으로 산업을 양성함으로써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유럽 국가들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기에 링컨 대통령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굳건한 기반을 가질 때까지는 철저한 보호무역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그가 비록 정보화시대가 아닌 역사적 과거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과 정신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링컨 대통령의 모습에서 읽어내야 할 부분은, 국정 책임자들이 다양한 국제 관계들 사이에서 공동선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과 고려가 필요한지, 나아가 정책적 결정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국정을 책임진 지도자들의 자질은 링컨 대통령과 같이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의식과 그 기반이 되는 인류를 향한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우리는 「최고 경영자 예수 JESUS CEO」 「예수의 인간경영」「서번트 리더십」 「성경으로 배우는 리더십과 축복경영」「예수형인간」 등 예수님의 지도자적 자질이나 경영자적 능력을 거론하는 서적이나 간행물들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이런 매체들은 예수님의 가장 크신 능력을 뭐라고 얘기할까요. 공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구체화되어 살아 움직이는 소통 능력, 겸손함 등을 꼽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도자들 가운데서 이러한 예수님의 자질을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 지 돌아본다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결코 적지 않은 신자 의원들마저 당리당략에 빠져 자신이 딛고 서있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반교회적이고 반인륜적 입법에 동의하는 현실에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향기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죽음의 그늘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일과 그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을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켜 개인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공동체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파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뚜렷한 푯대나 방향도 없이 신자유주의 조류에 몸을 내맡긴 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거센 풍랑에 난파당하지 않고 안전한 항구에 들어가려면 모든 사회 구성원의 하나된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성부께 의탁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되새기며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 가치를 두는 자세가 더없이 필요한 때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월 22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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