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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과 경제30: 함께할 영성과 그리스도적 실천의 기회로 삼아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4 조회수2,594 추천수0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0) 함께할 영성과 그리스도적 실천의 기회로 삼아야

올바른 경제활동의 목적 망각하지 말자


오늘날 우리는 일찍이 접해보지 못했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생겨난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새로운 분수령 앞에 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가난’을 떨쳐보고자 자유무역이라는 방편을 선택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 미증유의 사태가 자신의 삶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듯 한 사회 전체가 맞닥뜨리게 되는 고비나 위기는 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불안한 가능성을 지니고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게 됩니다. 같은 출발선 위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주어지는 상황에 몸을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향한 정신적 무장과 실천으로 헤쳐 나갈 것인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게 분명합니다.

많은 나라들이 체결한 FTA를 둘러싼 관계들 속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차지하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에 더 많은 어둠이 드리우게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생존이 걸린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쪽도 양보하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내재되어 폭발할 가능성이 어느 영역에서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FTA라는 틀 안에서는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윈-윈 전략’이 통하기가 힘들고 한쪽이 극심한 곤경에 허덕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FTA를 체결한 나라들의 상황을 돌아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2년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멕시코는 이 협정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등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NAFTA 발효 후 현재까지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해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도 NAFTA가 발효되기 이전의 절반 수준인 3%대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반대로 떨어져 삶의 질은 예전보다 못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또한 NAFTA 발효 후 10여년 사이에 농촌에서 500만 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해 농업이 사실상 붕괴상태에 처했을 뿐 아니라, 매년 3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 국경을 넘어 불법이민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등 머리 아픈 사회문제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NAFTA로 미국식 의료체계가 도입되면서 국가적 의료시스템마저 붕괴되어 가난한 사람들은 심각하게 아프지 않으면 병원 갈 생각도 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은 각 나라와 지역의 상황과 맞물려 예기치 못한 다양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림자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짙게 드리우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 섰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이들을 향해 열려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어떤 특정 조직의 이념이나 이해관계만을 내세우게 될 때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의 경제문제뿐 아니라 영성적인 면까지 고려해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제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사다리이자 발판일 뿐, 그 자체가 결코 삶의 목표나 본질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는 그동안 우리가 형성해 온 문명에서 인간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중요한 영역이기에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창조적 지혜를 총동원해서 사회 전체의 정신적 만족과 영성적 성숙의 끈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곧 경제활동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인류가 역사문화적으로 축적된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깊이 가슴에 새기는 가운데, 인류 공동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동선을 지향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교회가 가르치는 지상재화와 경제생활의 규범과 원리를 실천하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2월 12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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