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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8: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 (3)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7 조회수2,163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8)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 (3)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

개인 빈곤 · 불행은 복합적 원인


지난 글에서 재화의 사적 소유권과 공동 사용권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략히 정리하면 △ 자연권이며 절대적 권리인 공동 사용권 △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사용에 종속되는 사적 소유권 △ 타인의 이익과 공동선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재화 소유 등이다.

즉, 공동선에 기여하는 재화 사용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84항). 한마디로, 가톨릭교회는 개인 소득을 얼마나 올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이뤘느냐보다는 재화를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관심을 기울인다.


도와줘야 하나, 아니면 외면해야 하나?

오늘은 재화 사용의 보편 목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사랑)의 원리라는 교회 가르침을 살펴보자.
 
과거 농경사회에도 빈곤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빈곤에 대처하는 양식이 오늘날처럼 논란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흔히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불행(빈곤)을 함께 짊어졌기 때문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모든 생활양식을 바꿔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개인이나 한 가정의 빈곤과 불행에 대한 대응 양식일 것이다. 빈곤에 대한 책임이 개인과 가정으로 돌아간 것이다. 도시사회와 산업화 사회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를 앗아갔다.
 
물론 행복을 남과 나누지 않는다는 상대적 매력이 있기는 하다. 이를 흔히 자본주의의 개인주의화라 한다. 경제적으로는 주기적 불황이나 불평등 심화ㆍ빈곤 심화라 하고, 좀 더 그럴듯하게 '시장의 실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독자들도 거리나 지하철에서 도움을 청하는 이를 만났을 때 이런 갈등을 한 적 있을 것이다.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푼 주자니 그를 계속해서 그렇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하는 것 같고, 도와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 같고…."

혹자는 일할 수 있는(몸이 성하게 보이는) 사람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편하게 살려는 나쁜 버릇만 키우고,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데, 도움을 청하는 이의 어려움을 보고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불행에 처한 사람은 일단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사람은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은 일단 도운 뒤 자립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사회가 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복지와 관련한 다양한 견해들 사이의 논쟁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복지는 모든 시민의 권리로서 당연히 보편복지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과 최소한 도움을 주는 선별(잔여)복지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선별복지는 당장 위기 극복 차원에서, 보편복지는 중장기적 계획 차원에서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 가난한가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대 산업사회 혹은 탈산업사회에서 개인의 도덕적 결함, 즉 나태와 태만ㆍ게으름 같은 이유로 특정 개인이 불행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쟁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같은 사회경제 환경 때문에 누구나 불행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가 그 불행의 일부 혹은 전부를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지는 권리이며 사회 및 국가는 국민 복지에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국민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뿐만 아니라 보육ㆍ교육ㆍ주택 같은 영역에까지 사회 책임을 확장하려고 한다. '사회보장제도'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기에는 개인 혹은 가정의 생활은 그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노후를 준비할 생각은 않고 아예 놀면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려는 사람이 있다고 불편해한다.
 
의료보험료는 조금 내면서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을 자기 집 안방 드나들 듯이 한다고 비판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쉬운 일만 찾고, 그 사이 놀면서 고용보험료를 축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고 주장한다. 또 교육ㆍ보육ㆍ주택마련 같은 분야에 대해서도 개인 책임을 사회에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서울시의 무상급식과 관련된 주민투표도 따지고 보면 이 같이 복지에 관한 상충된 논쟁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시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개인 혹은 한 가정의 빈곤과 고통, 불행은 당사자 탓인가? 아니면 사회의 불완전함 혹은 구조적 결함 같은 '시장의 실패' 탓인가?"

물론,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더 큰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불행에 처한 이들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소개하겠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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