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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9: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 (4)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7 조회수2,267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9)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 (4)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

선행, 그들의 것 돌려주는 것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게으름과 나태, 도덕적 해이, 무책임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약성경의 신명기ㆍ레위기ㆍ시편, 그리고 예언서들은 가난과 빈곤에 처한 이들을 불의한 통치구조와 탐욕, 착취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공동체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돌보는 것을 의무로 명하고 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이웃을 위한 사랑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구약성경에서의 가난과 불의

교회 관행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란과 비판 소재가 되는 게 '십일조'다. 이는 십일조 자체보다 그 사용에서 비롯된다. 구약을 보면 "너희 소출에서 십 분의 일을 모두 떼어 놓고, 그것을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너희 성안에서 배불리 먹게 될 때(…) 당신께서 저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습니다"(신명 26,12-14)라며 그 사용처를 밝힌다.

이처럼 십일조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주로 쓰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힘없고 약하고 불쌍한 존재로서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비참한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 고통과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다. 구약의 시편과 예언서는 가난한 이들과 탐욕스러운 이들, 불공정한 재판을 일삼는 지도자를 대조시킴으로써 가난과 빈곤, 고통이 불의에 의한 희생임을 드러낸다.
 

신약성경의 사회적 약자와 불의

신약에서 예수님은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을 당신과 동일시하면서 당대 지도자를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가장 유명한 가르침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일 것이다. "누가 이웃인가?" 하는 물음에, 예수님은 "무력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라고 가르치신다. 무력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지나친 이들은 나름 형편이 괜찮은 이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이 누구인가를 가르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이들을 비판하시는 것이다.

행복선언에서도 예수님은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 편을 드신다. 반면 부유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꾸짖으신다. 가난하고 비참한 처지의 라자로와 그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풍요로움만 즐기는 부자의 비유를 들며 가난의 탓이 부자의 무관심에 있음을 드러내신다. 아울러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 그리스도 제자들이 따라야 할 길임을 밝히신다.
 

자비 이전에 정의의 의무이다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의 가르침은 어떤가? "애덕의 실천은 자선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빈곤 문제의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 대처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4항)고 말한다. 빈곤 원인이 개인의 도덕적 결함일 수도 있겠으나 사회 정치의 구조적 불의와 불완전함에도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10억 인구가 굶주림으로 시달리고,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주림과 기초적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 몰려있다. 가난한 나라의 빈곤이 과연 그들만의 탓일까.

국외여행을 며칠 다녀온 분들이 "그쪽 사람들이 얼마나 게으른지 구걸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겨. 그러니 가난할 수밖에…"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책임해서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랜 식민지배의 억압과 착취 때문에, 혹은 발전 자체가 불가능한 현재의 불의한 경제 교역조건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빈곤을 그들 나라의 부패와 게으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교회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오랜 식민지배의 억압과 착취로 이룬 선진국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있다.

교회는 가르침을 통해 사랑과 정의의 관계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가난한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 때,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맡겨진 정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정의에 따라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인양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분명 "재물에 지나친 애착을 갖거나 재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가 전하는 것은 재화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가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재화를 나누는 정신은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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