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현 신부의 사회교리] 다문화시대로 : 민족국가에서 다문화국가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다문화(Multi-Culture, 多文化)’이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다문화를 다문화(茶文化)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다문화센터에 간다는 말을 하면 혹자들은 차 마시는 것을 가르치는 곳에 가는 것으로 알아듣는 이도 있고 모든 문화, 즉 음악, 미술, 무용, 도예 등 각종 문화활동을 하는 곳으로 알아듣는 이도 있다.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고작 5~6년 전에 ‘다문화’란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기에 그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이 말이 왜 사용되게 되었는지 그 뜻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문화와 민족국가, 그리고 국가 간의 문화적 교류에 대해 살펴보자.
1. 문화란?
‘문화(culture, 文化)’란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양식이나 상징체계를 지칭하는 말인데, 사상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Jane Goodall)과 같은 동물학자는 문화를 “동물 생태계에서 위치하고 있는 인류의 행동양식”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네트 타일러(E. B. Tylor)는 “문화 또는 문명이란 제 민족의 양식을 고려할 때 한 사회의 구성원이 갖는 법, 도덕, 신념, 예술, 기타 여러 행동양식을 총괄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사회인류학자인 리치(E.R. Lesch)는 문화를 “인간과 분리 가능한 구성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자체를 분리 가능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키징(R. M. Keesing)은 인간이 생활하는 양식의 기초가 되는 문화는 “공유된 관념의 체계, 즉 개념이나 규칙이나 의미의 체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네스코는 2002년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였다.
이와 같이 학자들에 따라 문화를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문화가 특정한 사회의 구성원에 의해서 습득되고 공유되며 전달되는 행동양식 또는 생활양식의 체계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 우리는 문화를 특정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이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듯이 문화 역시 다양한 측면, 즉 법, 정치, 제도, 사상, 종교, 가치관, 예절, 언어, 미술, 음악, 건축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마치 유기체처럼 생성, 변화, 발전할 뿐 아니라 소멸하기도 한다.
또 문화는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종교, 언어, 지역, 민족, 국가, 생활양식 등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종교에 따라 그리스도교문화, 불교문화, 유교문화, 이슬람문화, 힌두교문화 등으로, 지역에 따라서는 동아시아문화, 중동문화, 유럽문화, 아프리카문화 등으로, 언어에 따라 영어문화권, 프랑스어문화권, 스페인어문화권, 포르투칼어문화권, 아랍어문화권, 중국어문화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울러 유목문화, 농경문화, 젓가락문화, 입식문화, 좌식문화 등 생활양식에 따라서도 문화를 구분할 수 있으며, 국가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미국문화, 일본문화, 중국문화, 독일문화 등으로, 민족에 따라 유다인문화, 한족문화, 한민족문화, 일본문화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문화를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종교, 언어, 민족, 국가에 따라 인간 삶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2. 민족국가와 민족문화
17세기 유럽에서 시민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출현한 근대국가는 민족국가(National State, 民族國家)로 발전하였다. 민족국가는 혈연적 근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건설된 국가로 혈연으로 연결된 민족이라는 공통성에 근거하여 동일한 언어, 동일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하나의 경제·정치적 공동체로 국민국가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민족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대두된 민족자결주의(National Self-determination, 民族自決主義)의 영향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각 민족별로 주권을 가진 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아시아지역에서 소위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주의에 따라 민족을 중심으로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민족국가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자국의 언어, 문화, 전통, 사상, 종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타민족의 언어, 문화, 전통, 사상, 종교 등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민족국가들은 한 국가에 오직 하나의 민족문화가 존재해야 하며, 자신들의 문화가 타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공교육을 통해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하나의 정치적·경제적 공동체를 혈통을 중심으로 이루어 나간다. 따라서 민족국가에서 구성원들은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의식이 생겨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학자들에 의하면 오늘날과 같은 민족의식은 18세기 후반에 실학사상과 함께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서양 열강들과 일본 침략과 관련하여 강화되었고, 1919년 3.1운동으로 민족해방운동이 가시화되면서 민족의식은 더욱 고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모두 단군(檀君)을 시조로 하여, 혈통으로 이어진 한민족(韓民族)이며 한국어를 사용하고 고유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인만의 고유한 삶의 태도와 풍습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은 한국에서 살아야 하며 한국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한민족의 영토로, 비록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한민족이기에 필연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국민에게 통일은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민족의식은 우리 국민이 하나로 일치할 수 있는 근원이 되지만, 한편으로 타민족에 대해 배타성을 지니고 다른 문화를 폄하하는 경향을 지닐 수도 있다.
3. 다민족·다문화국가로
일민족 일국가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 민족국가들은 폐쇄적인 독립체가 아니라 주변의 국가들과 다양한 측면에서 교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국가들은 자국의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이웃 국가들과 경제적 교류, 물적·인적교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적·인적 교류는 자연적으로 교류국 사이의 문화적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서구열강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민족이 한 정치체제에서 공존을 하게 되었다. 실례로 영국이나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았던 지역에 자신들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심었으며, 다른 한편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과 프랑스에 이주함으로써 식민지의 문화가 전파되기도 했다.
특히 세계화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북한을 제외한 세계의 어떤 나라도 고립적인 체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교통과 통신의 발전, FTA체제의 대두 등으로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이웃나라와 물적·인적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21세기의 국가들은 다민족, 다문화국가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외국인이 120만 명 이상에 이르고 있으며,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족, 유학생, 새터민 등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음호에서 알아보자.
[월간빛, 2012년 2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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