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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과 경제33: 우리 시대 착한 사마리아인 -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회인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0 조회수2,105 추천수0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3) 우리 시대 착한 사마리아인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회인가?


우리는 풍요롭고 평화로울 때 그것의 소중함을 잊고 그 가치를 돌아보는데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국민총생산과 교역량, 1인당 국민소득 등 경제지표 성장에만 목을 매는 모습이 일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마치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사회병리적 문제가 한꺼번에 사라지기라도 하는 양 경제제일주의가 삶 깊숙이 파고들어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공동체, 나눔, 평화 등 경제문제들과 거리가 있는 비경제적 가치들은 삶의 부수적인 부분으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물론 경제가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력이 증가한다고 더 행복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지난 1948년도만 하더라도 교역량에 있어 세계 100위였는데 이제는 10위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한 사회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에 눈길을 맞춘 하느님 나라 백성이라면 얼마나 더 잘살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하느님의 정의에 부합되고 어떻게 해야 공동체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더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회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그 길을 보여주십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그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참 이웃이 되어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FTA문제뿐 아니라,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위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국제 질서와 관련해 어떤 자세를 취하시고 어떻게 국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심판하시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 넘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 … 그러므로 이제 나는 곡식 단으로 가득 차 짓눌리는 수레처럼 너희를 짓눌러 버리리라. 날랜 자도 달아날 길 없고 강한 자도 힘을 쓰지 못하며 용사도 제 목숨을 구하지 못하리라.』(아모 2,6-7.13-14)

정의를 훼절함으로써 어떤 이는 더 잘살게 되고, 다른 이들은 더욱 헐벗고 굶주리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가르침입니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강대국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보다 훨씬 부강한 우리나라도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깨어있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하느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에 맞서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법을 수호하는 일입니다. FTA를 둘러싼 문제를 생각할 때도 우리나라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국가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 대해서도 정의를 요청하며, 자신보다 약한 나라에게 온정과 관대함을 펼치는 제도인지 살필 때, 주님의 정의가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익이 선’이라는, 모든 것을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켜버리려는 세상의 흐름과 맞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FTA와 관련해 이로 인한 실익보다는 하느님의 정의의 입장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먼저 살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판단이 어려울수록 상황에 관계없이 불변하는 척도인 복음의 정신을 전할 수 있는 예언자적 자세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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