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11) 자유무역은 절대선일까? (2)
진정한 공정 자유무역은 불가능
"금융 거래량이 실물 거래량을 훨씬 능가한 지금, 금융 부문은 경제의 실질적 토대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발전의 준거로 삼을 위험이 있다.(…) 금융경제는 실제경제에 도움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민족과 인류 공동체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본래의 근본적 역할을 포기하게 되었다."(「간추린 사회교리」 368-369항)
실물경제 위에 군림하는 금융시장
자본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산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수정자본주의를 거론하는데, 최근에는 '주주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주주(투자자)의 최대 배당 이익에 경영목표를 두는 것을 말한다.
이런 투자자들의 활동무대인 금융시장의 경미한 재채기는 보통 사람들이 생활하는 실물시장에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덮치는 건 아닌가 살펴봐야 한다. 금융경제가 실제경제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건 아닐까?
몇 해 전 미국에서 모기지론 사태가 있었다. 그 용어조차 낯설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택담보대출쯤 될 것이다. 태평양 건너 어느 한 나라에서 생긴 이 사태를 놓고 금융위기라고 했다. 우리 지도자들은 "우리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며 그 대책을 이미 마련해 놓았다"며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얼마 되지 않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는 40여 개 생필품 목록을 정해서 특별히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물가는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를 대로 오른 물가가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다.
금융위기에 이어 오는 물가상승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누굴까? 당연히 소득이 낮은 서민층이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자신과 가족이 누리는 생활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주택담보 대부업체의 재채기로 이 땅의 수많은 서민층의 삶이 황폐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얼마 전 우리 언론은 한국 무역규모가 드디어 1조 달러를 넘었다고 야단스럽게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서민들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공정한 자유무역은 없을까?
자유무역(Free Trade), 그것도 국제무역(International Trade) 자체를 교회 가르침에 비춰 살펴보자.
"국제금융 체제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극심한 불균형에 비춰 볼 때, 전체적 양상은 더욱 혼란스러워 보인다. 금융시장의 규제 철폐와 쇄신 과정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만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배제된 나라들, 특히 약소국이나 발전이 지연된 나라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금융 불안이 실제경제 체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들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걱정거리가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369항)
우리는 자유무역이 금융거래의 자유, 곧 금융시장의 규제 철폐를 주요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닌지, 약소국이나 발전이 지연된 나라가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지 살펴봐야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 담을 허물었다면 각 나라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혹시 그 혜택이란 것이 그림의 떡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혜택보다는 실제경제 체제에서 부정적 결과들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교회는 지난 2003년 '국제무역에 관한 윤리적 지침'을 통해 이런 자유무역의 한계를 밝힌다.
지침에서 "자유무역은 양 당사자가 경제적으로 공평하고 그로 인하여 진보가 촉진되고 노력이 보상받는 경우에 한하여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국제무역 시스템에 참여한 국가들은 전혀 동등하지 않다. 서로 동등하지 않은 국가에게 그들의 다양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접근법만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자유무역의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재화나 용역의 자유로운 교환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은 발전과 평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공정한 자유무역은 없다. 자유무역은 사회정의가 요구하는 바를 따르고, 국민 모두와 개개인의 발전에 기여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무역이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과연 진정한 자유무역으로 불릴 수 있을까? 혹은 부당한 접근법이 될까? 혹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걱정거리를 안겨줄까? 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고 시간이 흐르면 그 답을 알게 될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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