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4) 착한 사마리아인과 나쁜 사마리아인
자유무역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광풍(狂風)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The Good Samaritan Law)’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가져다주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이 법은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가까운 중국 등 적지 않은 나라에서 이러한 법을 두고 있습니다.
법으로 사람의 선행을 강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약자를 보호해야만 하는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일은 오늘날의 세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참다운 이웃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며,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되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고 강조합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되는 급격한 세계화로 서로 다른 지역 국가들 사이의 국제무역이 일상화되고,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복잡다단한 국제 상황 속에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쁜 사마리아인’은 이기적인 부자나라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나라들은 자신들은 보호무역으로 이득을 챙길 만큼 다 챙기고 나서 개발도상국들이나 후진국들이 공정한 경쟁에 못 뛰어 들게 하기 위해 자유무역(Free Trade)을 권하고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파생되는 자유무역의 폐해와 국제관계 안에서 드러난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고 자유무역의 거짓 신화만을 과대포장해 정보에 어두운 이들을 속여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더 깊은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실제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자유무역의 선두 주자라고 알려진 영국과 미국이 실은 부자나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하게 자신들의 나라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실시한 나라였다는 점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가 “과거에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항상 어린아이처럼 지내는 셈이다. 과거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세계는 늘 지식의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과거의 ‘진실’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게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입니다.
자유무역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광풍(狂風)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휩쓸면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도 거의 없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 나라의 국부를 압도하기까지 하는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초국적기업들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을 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투자나 활동을 규제하는 나라들에게 본때를 보일 수 있는 정도로 막강해져 있습니다. 나아가 부자나라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나라에 대해서만 투자 결정을 내리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국제협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이러저런 제한을 부과해 결국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 전쟁이 일상화된 국제사회에서 ‘착한 이웃’, ‘우호’라는 말은 겉포장에 지나지 않는 수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이런 정의가 사라져 버린 듯한 국제관계 속에서, 특히 경제를 둘러싼 관계들 속에서도 ‘착한 사마리아인’의 몫을 고민해 봐야 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3월 11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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