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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계시, 성경과 성전 -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3 조회수2,811 추천수0
[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계시, 성경과 성전 -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주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는 인간의 질문에 결정적이고도 풍부한 답을 주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8항).

인간에게는 삶이 있다. 인간은 그 삶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통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하느님이 주시는 이 답을 ‘계시’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바로 이 삶,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활동과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바로 ‘성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신앙인의 안목으로 해석하고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하느님의 결정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였다. 그분의 삶과 가르침,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결정적 계시이다. 그런 예수님의 삶,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삶을 신앙인의 안목으로 해석하고 기록한 것이 신약성경, 특히 복음이라 하겠다.

곧 ‘성전’은,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시어, 하느님과 그 백성이 함께한 ‘삶’이고, ‘성경’은 그렇게 하느님과 그 백성이 함께한 ‘삶의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결정적이고 충만한 계시이므로, 모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비추어 이해하고 해석하여야만 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루카 7,28).

조셉 돈더즈의 복음 묵상글 「예수 그 낯선 분」이라는 책에서 ‘앞서 온 세례자 요한’의 일부를 옮겨보겠다.

“요한은 옳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의견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요한이 옳기는 옳았으나 방식은 낡은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요한은 옳았으나 성자 요한과 더불어 구약은 끝났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종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만 주로 그랬습니다. 그것이 ‘기쁜 소식’이라고 불릴 수는 없었습니다.

성자 요한은 탄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신 분이었습니다. 요한은 장송곡을 불렀지만, 예수님은 알렐루야를 노래했습니다. 요한은 빵 먹기를 거부했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빵을 떼어 주셨습니다.

요한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부엌의 모든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낙타가죽을 입고 다녔지만, 예수님은 솔기 없는 옷을 입으셨습니다. 요한은 경고를 했으나, 예수님은 초대를 하셨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물었습니다.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그대 요한은 낡은 시대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인물이지만 새 시대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그대보다는 크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의 내용 일부를 옮겨보겠다.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 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 청년은 사십 일을 걸어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다. 그 현자의 저택은 온갖 광경들과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 자신의 차례가 되길 오랫동안 기다린 이 청년에게 현자는 행복의 비밀을 당장은 알려줄 수 없다며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현자는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네며 걸어다니는 동안 그 찻숟가락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그는 현자 앞으로 돌아왔다. 자, 어디 보자. 그리고 현자는 질문을 시작했다.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봤소? 정원사가 십 년이나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도 봤나요? 서재에 꽂혀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다. 기름 안 쏟으려고 신경을 쓰다 보니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현자는 집의 아름다운 것을 좀 살펴보고 오라고 청년을 되돌려 보냈다.

그제야 젊은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다. 저택의 천장과 벽에 있는 모든 예술품들, 정원과 주변의 산들과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현자 앞에서 자신이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현자가 물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을 때 그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오.”

찻숟가락의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저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청년의 모습, 바로 옳기는 하였으나 기쁨을 살지 못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한 요한의 모습과도 같다. 저택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나 찻숟가락의 기름을 떨어뜨린 청년의 모습, 바로 온갖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나’를 잃어버리고 공허함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 또는 하느님을 찾는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의 명예나 성취 등 여러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어느 순간 하느님을 잃어버린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모습과도 같다.

늘 기도하시고,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시며, 그러면서도 세상 모든 이에게 기쁨을 선물하신 분, ‘죄 짓지 않음’이 아닌 ‘사랑함’이 바로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며, 참행복의 길이요 바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삶과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우리 신앙인이 성실히 살고 희생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는, 심판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기쁨과 희망을 알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면서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랑의 삶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교회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 김정훈 도미니코 - 마산교구 신부. 200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파동 · 양덕동 · 태평동본당 보좌, 남지 선교본당 주임에 이어, 현재 진주 봉곡동본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2월호,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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