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5) 착한 사마리아인과 공정무역 (1)
불평등한 국제무역 바로잡는 ‘윤리적 소비’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세계화의 광풍(狂風)이 세상을 휩쓸면서 가난한 이들을 지켜주던 희망의 촛불은 갈수록 잦아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가 희망이 되고 복음이 되는 삶을 살아 주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너무도 거대한 흐름이어서 넘어서기는 고사하고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라 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 희망을 주면서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성경은 천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무서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 너의 하느님이 함께 있어 주겠다.”(여호 1, 9)
도저히 거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흐름 앞에서도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주님 말씀만을 믿고 세상을 향해 눈을 더 크게 뜨면,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대안’이라는 씨앗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세계화라는 폭풍 앞에 존재조차 느끼기 힘든 미풍(微風)처럼 보일지라도 그 미풍 속에 주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가까이서 아주 미소한 모습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윤리적(착한) 소비’라고도 불리는 공정무역(Fair Trade)입니다.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합리적 대가를 지불해 지구촌의 빈부 격차를 줄이자는 뜻에서 시작된 자발적인 움직임입니다.
공정무역은 진솔한 대화, 불의를 불식시키는 경제적 흐름의 투명성,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 등을 바탕으로 하여 국제무역에서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국가들 사이의 우호적 거래입니다.
공정무역은 18세기 영국에서 노예무역과 노예제도 폐지를 염두에 두고 실시된 설탕불매 운동이 기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뜻있는 종교인들이 중심이 돼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서인도제도의 설탕 대신 노예들이 생산하지 않는 동인도지역의 설탕을 대체 구매하자는 대대적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결국 이 운동으로 1807년 노예무역이 폐지되고 1833년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노예제가 폐지되기에 이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0년대 말, 영국의 국제적인 빈민 구호 단체인 옥스팜(Oxfam)이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 난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와 같은 움직임은 공정무역 단체를 만드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져 1964년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기구인 ‘옥스팜 페어 트레이딩(Oxfam Fair Trading)’이 탄생하고, 196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페어 트레이드 오가니사티에(Fair Trade Oganisatie)’가 설립돼 제3세계 극빈 노동자들을 살리는 운동이 보다 본격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무역은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발전의 혜택에서 소외된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에게 보다 나은 거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공정무역단체들은 소비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생산자들에게 지원을 제공하고, 기존의 무역 관습과 법규를 개혁할 수 있도록 의식 개선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정무역만으로는 갈수록 격해지는 양극화 문제라든지 경쟁에서 승리한 이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대우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의 삶이 하느님 나라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면, 그래서 하느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맛들일 수 있다면 분명 뜻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공정무역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3월 18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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