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14) 사회복지와 교회의 가르침 (1) 풍성한 복지의 잔치(상) - '위기에 내몰리는 시민의 삶'
알맹이 없는 복지 논쟁 언제까지
가물에 콩 나듯 이 땅의 시민이 사회의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19대 국회의원 총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후보자들은 저마다 시민을 편하게 해주겠다며 지지를 호소한다. 그들의 호소만 들으면 복지가 흘러넘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까지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실패 현상 가운데 하나가 사회 구성원 간의 불평등 심화라 할 수 있다. 시민 사이의 심각한 불평등은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국가는 이를 완화 혹은 극복하기 위해 사회보험제도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 '4대 보험'이 한 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보장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가 어렵고, 당연히 생활의 곤란함을 겪는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마련해 그 위험에 대비한다.
노동하다 다치면 마찬가지로 생산 활동을 못하게 되고 살림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로 위기 극복을 돕고 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실직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용보험제도로 이들을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 더이상 생산 활동을 할 수 없으면 소득이 없게 되고 경제적 위기를 맞이한다. 이를 위한 것이 바로 국민연금보장제도다.
이 제도들의 공통점은 시민의 '생산 활동'을 전제하고 생산 활동의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 복지정책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 활동이 필요하고 그 활동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험료를 부담할 형편조차 되지 못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활용해 기초생활을 지원한다.
이런 제도들을 사회보장제도라고 부른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회가 일정 부분 보완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시민 개인이나 가족은 물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사회 전체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셈이다.
끊이지 않는 복지 논란, 건전한 토론이 필요하다
선거를 앞두고 모든 후보자가 복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복지에 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왜 사회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그렇게 주장하면서 개인에 대한 책임을 사회에 떠넘기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주장과 그에 따른 논란이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특권층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기에 사회는 어떤 형식으로든 그 구성원이 삶을 유지 발전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재연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양분하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에 관한 논란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보편복지는 복지를 사회적 권리로 보며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주장한다. 4대 보험제도나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이나 어린이를 위한 공공 교육이 보편복지에 속한다. 보편복지는 모든 사람이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전제하기에 공공제도로서의 서비스 제공을 선호하며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다만 경비가 많이 소요될 수 있고 복지 서비스 남용 문제에 대한 우려가 문제로 지적된다.
선별복지란 지원이 필요한 가족이나 개인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상적으로 자산조사를 활용한다. 선별복지는 제한된 사회정책을 선호하며 보편복지 정책을 낭비적이라고 간주한다. 개인 혹은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지원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통합을 저해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 각각의 복지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예를 들어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선별복지가 적절하다. 다른 면으로 복지를 사회적 권리, 혹은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보편복지가 적절할 것이다.
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면 낙인(수치심)을 받지 않는 보편복지가 적절하겠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정부)에서 본다면 경비의 효율성이란 점에서 선별복지가 적절할 수 있다. 결국, 보편복지 주장과 선별복지 주장 사이에는 건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요구된다.
그런데 우리는 선별복지를 주장하면 보수주의 딱지를, 보편복지를 주장하면 진보주의 딱지를 붙인다. 더 나아가 이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몰고 감으로써 시민 복지를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복지에 관한 주장은 곳곳에 흘러넘치는데 정작 복지 실현은커녕 시민의 삶은 점점 더 위기에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평화신문, 2012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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