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6) 착한 사마리아인과 공정무역 (2)
오늘날 ‘착한 소비’ … 초대교회 공유경제 재현
이른바 ‘윤리적(착한) 소비’를 바탕으로 한 공정무역은 세계화로 넘실대는 각박한 경쟁시장에서 그리스도적 가치를 지켜나가고 하느님 나라를 지상에서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1997년 만들어진 국제공정무역상표기구(FLO)는 일정한 기준에 맞는 상품을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해주고 있습니다.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을 받게 되면 생산자들은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받습니다. 자유무역 체제에서는 생산량이 대책없이 증가할수록 생산자의 삶이 피폐해지기 쉽지만, 공정무역 체제는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일례로, 세계 시장 가격이 최소 가격보다 올라가면 현재의 세계 시장 가격대로 지불하고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조절하며 엄격한 감독을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 구조를 최소화해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의 많은 부분이 생산자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공정무역 상품에는 사회간접자본의 개발을 위해서 일정액을 생산자에게 추가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사회적 초과 이익’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생산기술을 개발하거나 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거나 도로를 포장하거나 상수도와 전기 시설 등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어떤 곳은 연금제도를 만들어서 노령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공정무역이 지닌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격이 일반 제품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선택하는 행위는 단순히 ‘착한 소비’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착한 소비자들이 많아짐으로 인해 붕괴 지경에까지 내몰렸던 농촌의 가정들이 생산활동을 유지할 수 있게 돼 마을 공동체가 발전하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소비’의 차원을 넘어 사회, 나아가 환경, 생태계까지 생각하는 ‘윤리적(착한) 소비’가 우리 삶의 뿌리가 되고 확산될 때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이 전개했던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공유경제의 모습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적 소비’는 인간, 동물, 환경을 착취하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 형태를 의미합니다. 즉, ‘합리적인 소비’가 비용의 최소화,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적인 면에 중점을 둔다면, ‘윤리적 소비’는 환경, 노동, 동물 보호와 같은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고려하는 소비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 소비를 삶의 준거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환경 보호, 인권 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갖고 윤리적 생산을 하는 기업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을 학대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런 기업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지고 윤리적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 좀 더 인정과 연민이 넘치고 사람냄새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 가치와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현존하는 모순적 상황에서,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바보스럽게 보일지라도 ‘홀로’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가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상의 순례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1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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