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38) 착한 사마리아인과 공정무역 (3)
올바른 소비생활, '창조활동' 동참하는 것
소비는 인간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피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 28)고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은 좋은 것들을 사람에게 주시며 양식으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창조 때부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고 지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비활동에는 생산활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경제활동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에서도 볼 수 있듯 창조(생산)한 이후에야 양식으로 삼을 수 있는 소비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올바른 소비활동이 곧 창조활동에 동참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소비자의 힘
이처럼 소비와 생산 활동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실제로 일상에서 쉼 없이 이뤄지고 있는 소비활동은 소비 자체만으로 그치지 않고 소비의 연장선상에서 생산활동을 비롯해 그 생산이 이뤄지는 환경과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단적인 예로 한 유명 아웃도어 의류업체를 둘러싼 동물학대 논란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업체는 윤리적 생산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는 동물학대를 통해 대량생산된 거위 털로 제품을 만들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상당수 국가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산업계의 생산방식과 관행이 바뀐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소비 양식도 바뀌는 등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의 선택은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소비와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소비활동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소비는 일종의 투표 행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소비행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현격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고 건전하고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염원한다면 ‘윤리적(착한) 소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잣대를 가지고 윤리적인 소비를 해나가야 할까요.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은 ▲ 사람과 노동을 위한 소비 ▲ 농업과 환경을 살리는 소비 ▲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소비 ▲ 건전한 문화를 위한 소비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노동을 위한 윤리적 소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좁혀진 이 시대에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생산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생계를 위해 이윤추구의 수단과 방편이 돼 희생되고 있는 현장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동노동문제뿐만 아니라 저임금·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로조건, 환경 파괴, 노동의 기본권리 박탈 등 노동자의 본질적 권리가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또한 불평등한 무역 구조로 인해 제3세계 가난한 생산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공정무역(Fair Trade)’입니다.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지급하고 적절한 노동 환경에서 만들어진 상품만을 거래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눔의 정신이 바탕이 된 윤리적 소비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의한 세상을 바꾸는 저력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8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