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성령께서는 어떤 상징으로 나타나시는가?
탈무드에 이런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인데, 하느님께서는 왜 빵나무를 만들어주지 않으셨을까?” 왜 그러셨을까요?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 제목처럼 이 ‘불편한 진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탈무드는 그 이유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의 동반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완성품을 주지 않으시고, 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창의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이를 활용해서 좀 더 나은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답에 공감하시나요?
질문은 매혹적이었는데, 대답이 은유적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선문답 같아서 명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 가운데 하나를 배운 것 같아서 뿌듯하기는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많은 가르침들은 언어라는 불완전한 소통수단을 통해서 유한한 인간에게 전달됩니다. 병이 나으면 약이 필요 없어지듯이,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을 대면하게 된다면, 우회적인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 진리 자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과연 언제 올까요?
지상의 나그네로 살아가는 한, 유한한 인간은 완전히 정의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개념들을 설명하려고, 끊임없이 상징적인 사건이나 사물, 또는 용어 등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연상 작용을 통해서, 그 의미를 유추할 것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진리를 전달해 주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수단이어서, 오히려 그 진실을 감출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려고 비유와 상징들을 사용합니다. 상징들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그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고, 그 의미도 더욱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상징이 없다면, 우리는 언어의 빈곤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대하여, 특히 성령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의 상징
성령의 상징은 여러 가지입니다. 성령은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성심에서 흘러나오고, 세례를 받은 이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는 물, 견진성사의 성사적 표징인 기름부음, 닿는 것을 변화시키는 불,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어둡고 빛나는 구름, 성령이 주어지는 안수, 세례 때에 그리스도 위에 내려와 그분께 머무른 비둘기 등으로 표현됩니다.
물 ·· 우선 성령의 상징은 물입니다. 물은 세례에서 성령의 활동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물은 하느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의 의미를 표현해 주는 가장 유효한 성사적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갈증을 해소해 주며, 불모지를 옥토로 만들어줍니다. 물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줄 뿐만 아니라, 육체적 생명에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기름부음 ·· 성령과 기름부음은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기름부음은 성령에 대한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상징입니다. 이 기름부음의 효력을 파악하려면 성령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기름부음, 곧 예수님의 기름부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분’을 의미합니다.
구약에는 주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특출한 예가 다윗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성자께서 취하신 인성은 온전히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세워지셨습니다.
불 ·· 물이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가리킨다면,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시키는 힘을 상징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로 카르멜 산 위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루카 3,16)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성령께서는 오순절 아침 ‘불꽃’ 모양의 혀들로 제자들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의 마음을 채우십니다. 영성적 전통은 이 불을, 성령의 활동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징의 하나로 간직해 왔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구름과 빛 ·· 이 두 상징은 성령의 발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발현하실 때부터 구름은, 때로는 어두운 구름으로 , 때로는 빛나는 구름으로, 그 초월적 영광을 덮어,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계시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이루십니다. 성령께서 동정 마리아 위에 내려오시고 ‘감싸주시어’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에서 성령의 ‘구름이 일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감싸여”(사도 1,9) 승천하셨습니다. 또한 구름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람의 아들을 그 영광 안에서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인호 ·· 인호(印號, sphragis)는 기름부음과 가까운 상징으로서 세례와 견진, 성품 성사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의 지워지지 않는 결과를 가리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날인하신’(요한 6,27 참조)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성부께서는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날인하십니다.
안수 ··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은 행동을 합니다. 더 나아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주어집니다.
손가락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은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탈출 31,18 참조) 돌판에 쓰셨지만, 사도들에게 써주신 “그리스도의 추천서”는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2코린 3,3) 새겨졌습니다.
비둘기 ··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모습은 그리스도교 성화상의 전통적인 주제입니다. 대홍수가 끝났을 때,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는 사람이 다시 땅에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싱싱한 올리브 잎을 가져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 위에 내려와 머무르십니다.
* 최성우 세례자 요한 - 의정부교구 신부. 전 서울대교구 초대 전산정보실장으로 양업시스템, 가톨릭인터넷 굿뉴스를 개발했고, 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장으로 유무선통합양업시스템, 가톨릭VJ아카데미 등을 만들었다. 현재 야당맑은연못본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최성우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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