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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19: 국가의 실패를 경계하며 (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6 조회수2,074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19) 국가의 실패를 경계하며 (2)

갈 길 잃어버린 ‘목자 없는 양’


지난호에서 경제학에 나오는 ‘정부의 실패’를 언급하면서 이를 확장해 ‘국가의 실패’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정부의 행위가 경제분야는 물론이고 비경제분야에서 실패할 때 국민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법질서(정의) 붕괴, 국방 실패, 교육과 문화 왜곡 따위 불의한 현상으로 국민이 겪는 고통이 정도를 넘을 때 역시 우리는 국가의 실패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드러난 국가의 실패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이 같은 국가의 실패를 가르치는 대목을 찾아보자.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 현실을 유비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사무엘 상권 8장 10-18절을 그대로 옮긴다.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 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은 하느님만이 임금이었던 부족국가 이스라엘이 이제 왕이 다스리는 왕정국가로 넘어가는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성경학자들은 이 대목 중 이스라엘이 왕정국가체제시대에 접어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앙으로 재해석한다. 앞에서 다룬 내용을 빌면, 국가의 실패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신약성경의 복음은 힘없는 식민지 백성과 당대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자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취한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동족 유다인들은 국가의 실패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로마 식민통치는 유다인의 모든 사회생활 영역에서 폐해를 끼쳤다.

정치적 예속과 경제적 피폐, 문화 · 교육의 왜곡, 인간 존엄성 상실은 유다인 개인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 전체를 어둠으로 내몰았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시대가 그랬으며, 예수님께서 만난 사람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의 처지와 같아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대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 기득권 유지를 위한 율법주의, 즉 관료주의는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다. 백성의 처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국가의 실패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의 성공을 위한 국민의 관심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셨다. 국가의 실패라는 현실에서 예수님은 변함없이 아버지 하느님 뜻을 따르셨다. 예수님은 쓰러진 백성을 일으켜 세우시려 했다. 로마 권력과 그 권력을 등에 업고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지도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없애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행적은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국가의 실패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35년과 6 · 25전쟁이 그렇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는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국가의 실패로 인한 상처와 폐해는 아직도 온전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할머니들 시위는 어느새 1000차를 훌쩍 넘겼다. 6 · 25전쟁으로 남과 북에서 서로 그리워하며 고향에 갈 날만을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겪는 고통 역시 국가의 실패가 낳은 비극이다.

아마도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의해 국가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국가라는 틀 안에서 국민으로 사는 우리가 국가의 실패를 경계하고 좋은 정부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평화신문, 2012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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