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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20: 시장의 실패를 바라보며 (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26 조회수1,961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20) 시장의 실패를 바라보며 (1)

국가와 시장, 상호보완 필요할 때


전체 국민에게 유익한 영향은 다 어디 갔어∼

지난호에서 정부 혹은 국가(the state)의 실패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부가 경제분야에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를 '정부의 실패'라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인권과 사회정의, 법질서, 교육, 문화, 국방 따위 비경제적 분야에 걸쳐 시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를 '국가의 실패'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하며 현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한다. 오늘은 정부의 실패에 대응하는 '시장의 실패'에 대해 살펴보자.


서민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시장의 실패

시장의 실패란 정부가 경제분야에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더라도 최소한으로 개입했을 때, 혹은 부적절하게 개입했을 때 나타나는 폐단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를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라고 설명한다.

19세기 자유주의 경제와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는 △빈부격차와 빈곤의 확대 △주기적 불황과 대량실업 △규모의 경제에 따른 독과점화 △공공시설과 공공서비스 같은 공공재의 부족 △환경파괴와 오염 같은 외부불경제 효과를 유발했다. 자신의 나쁜 행위로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이 외부불경제 효과로, 이 때문에 시민의 삶은 고달파진다. 이를 '시장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실패와 심화되는 사회 불평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거나 완화하고자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이른바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한다. 이는 정부가 자본주의의 토대를 유지하며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분야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수정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경제 운용은 시장의 실패를 완화하거나 극복하는 동시에 경제성장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인류 역사에서 그만한 경제적 번영을 누린 적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이 번영도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실패가 나타난 것이다. 정부가 경제 분야에 개입했지만 무능, 부패, 무사안일, 혹은 관료주의로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경제생활을 하는 절대다수 시민을 곤경으로 내몰았다고 비판받는 대목이다.

그리고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수상이 집권하는 1980년대부터 우리 귀에 익숙한 '작은 정부'의 구호가 만병통치약처럼 등장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에 위세를 떨쳤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2008년 미국의 주택담보 대부업 사태로 확산되며 전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금융규제완화의 폐해와 불평등의 심화는 우리 시대의 난치병이 되었다.


시장과 국가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루는 세상

앞에서 제시한 폐단들의 정도와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언론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용어들만 떠올려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빈곤의 확산으로 20:80으로 불리던 빈부격차의 골은 10:90으로, 급기야 1:99의 세상으로 묘사된다.

주기적 불황과 대량실업은 세계적 경제위기, 혹은 금융위기, 대불황이란 용어로 대치됐다. 대량실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말로 이름을 바꿨다.

대기업과 재벌, 초국적 기업의 영업이익 잔치와 중소기업의 몰락 또한 낯설지 않다. 공항과 도로, 철도, 의료, 교육 전 분야의 공공재를 민영화하려 한다. 민영화의 폐단을 숨기기 위해 선진화란 용어까지 만들었다. 환경 보호를 노래하면서 4대강과 갯벌 개발, 해군기지와 핵발전소 건설 같은 환경파괴 사업이 돈벌이 사업으로 강제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공공부채와 가계부채가 각각 1000조에 육박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수많은 사람이 품위 있는 생활은커녕 생존 그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시장의 실패에다 정부의 실패가 겹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시장과 국가는 서로 보완하며 조화롭게 활동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자유 시장은, 국가가 경제 발전의 윤곽을 정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출 때에만 전체 국민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서도, 국민들의 인간적 성장에 필수적인 재화와 용역이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보장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그러한 경우, 국가와 시장의 상호 보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간추린 사회교리」 353항)

한 개그맨의 유행어 "전체 국민에게 유익한 영향은 다 어디 갔어∼"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평화신문, 201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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