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22) 시장의 실패를 바라보며 (3)
늘어만 가는 나랏빚에 깊어가는 서민의 한숨
가계부채와 국가채무
지난 호에서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소개하면서 2인 이상 가구의 한 해 평균 소득이 4600만 원이지만 가계부채는 가구당 5100만 원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가계부채만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로 국가채무가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2007년 299조 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12년에는 이보다 약 50%나 증가한 448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더 무서운 것은 채무의 양보다 성격이다.
국민의 또 다른 빚, 적자성 채무
자산을 매각해서 상환할 수 있는 채무를 금융성 채무라고 한다. 돈을 빌려 쓰긴 했지만 가진 어떤 것을 팔아서 갚을 수 있는 채무를 말한다. 빚을 진 것은 부담이 되지만 필요할 때 당장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 고마울 수 있다.
그러나 금융성 채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채무에 대응할 만한 자산이 없어서 시민에게 세금을 걷어야만 갚을 수 있는 이른바 적자성 채무란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적자성 채무 비중이 2012년 전체 나랏빚의 49.5%인 222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국가채무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채무자가 갚지 못할 때 누군가 대신 갚아야 하는 보증채무란 것도 넓은 의미의 나랏빚이라 할 수 있다. 또 국가재정으로 해야 할 사업을 공기업에 넘긴 예도 있다. 중앙정부와 공기업, 지방정부와 지방공기업이 짊어진 부채도 고려해야 한다.
이 모든 부채를 다 합하면 10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물론 그 가운데 상당 부분(적자성 채무)을 시민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나랏빚을 갚지 못할 때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어진다. 결코 가볍지 않은 벗기 힘든 짐이 될 것이다.
국가의 감세정책, 불필요한 재정 투입
물론 국가채무의 증가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펼치려면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세수 확보 없이, 혹은 세수 감소를 꾀하면서 지출을 위해 빚을 낸 경우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23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4대강 사업이 떠오른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서라도 정부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그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꼭 해야 했는지, 불가피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소득세 등에 대한 대규모 감세정책을 펴면서 막대한 세수 감소를 초래했다. 실제로 정부의 조세 부담률은 2007년 21%에서 19.3%로 낮아졌다. '세금폭탄'이란 자극적 표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면서 세수 감소를 정당화했다.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했지만, 활성화된 시장에서 분배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상식적으로 똑같은 지출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수입을 줄이지 않았다면 적자는 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입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출을 늘렸으니 빚이 불어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을 높이려면 시민의 조세저항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부 지출을 줄이려면 이른바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할 텐데, 이는 공공정책의 축소를 불러온다. 이 역시 시민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 경제
어쩌면 인위적 통화팽창 정책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인플레이션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인위적 통화팽창은 실질 경제가 생산하지 않은 자원을 짜내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수준과 소득의 재분배를 유지할 수 있게 하지만, 대규모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치솟는 물가에 살아남으려면 시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야 한다. 정치 분야에서 통화팽창 정책을 반길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가계부채 혹은 민간부채의 위기를 겪고 있다. 여기에 공공부문의 부채 위기와 통화팽창 정책의 한계, 그리고 "윤리적으로 심각한 걱정거리가 된 국제 금융 체제의 극심한 불균형"(「간추린 사회교리」 369항)에 거의 맨몸으로 노출돼 있다.
몇 해 전 미국의 금융위기가 우리나라 실물경제에 끼친 악영향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금융 거래량이 실물 거래량을 훨씬 능가한 지금, 금융시장의 재채기는 실물시장에 태풍이 되어 돌아온다.(「간추린 사회교리」 368항 참조)
"점점 더 확대되어 가는 경제 환경 안에서(…) 국가의 정부들은 국제 경제와 금융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빠른 변화 과정을 통제할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42항)
[평화신문, 2012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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