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23) 시장의 실패를 바라보며 (4)
양극화로 번지는 빚 권하는 사회
빚지고는 살기 힘들어
"빚지고는 못살아!"는 말이 있다. 좋은 뜻으로 이 말을 할 때는 남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거나, 사회제도나 환경이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줄 때 꼭 보답하겠다는 다짐이 포함돼 있다. 우리 일상생활과 사회구조에서 그렇게 고마워하면서 지낼 수 있는 일이 많다면 그 삶은 하루하루가 살 만한 날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마움보다는 원망 때문에 힘겨울 때도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 나에게 억울하게 불이익을 안겼을 경우, 혹은 내가 처한 사회구조가 터무니없이 부조리할 때가 그렇다. 마음은 증오나 원망으로 어지러워지게 마련이다. 그 정도를 넘으면 "빚지고는 못살아!"가 복수와 보복의 다짐이 된다.
이 시대의 매정한 종
성경에서는 빚이 죄와 관련된다. 죄를 용서한다는 것과 빚을 탕감한다는 말이 나란히 쓰인다. '매정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에서 이를 볼 수 있다. 만 달란트를 임금에게 빚진 사람과 그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 이야기다.
1데나리온은 성인 남성이 남의 밭에서 하루 일하고 받는 품삯 정도다. 6000데나리온이 1달란트이다. 이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원화로 환산을 해보았다. 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하루 밭일을 하면 대략 6~8만 원쯤 받는다고 한다. 도시의 편의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어린 학생들이 시급 5000원을 받으니까, 하루 8시간 일하면 4만 원쯤 받을 것이다.
밭에서 일하건 편의점에서 일하건 하루에 5만 원쯤 받는다고 치면, 백 데나리온은 500만 원쯤 되는 셈이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이니까 3억 원쯤 될 것이고, 만 달란트는 무려 3조 원쯤 되는 것이다.
성경의 매정한 종은 무려 3조 원을 탕감받아 놓고, 자기한테 500만 원 빚진 친구를 멱살잡이하고 그것도 모자라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똑같지는 않지만, 공교롭게도 이를 떠올릴만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15년 전 쯤 온 나라를 뿌리채 뒤흔들어 놓은 이른바 IMF 사태를 맞았다. 구조조정이니 기업매각이니 하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그 당시 매각한 기업이 ○○은행이었고, 이 은행을 사들인 자본이 있었다.
은행을 사들인 자본은 공적자금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킨 다음 그 은행을 매각하면서 무려 수조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러는 사이 대학생들은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학업에 전념하는 대신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고, 마침내는 대출을 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등록금이 대략 500만 원쯤 될 것이다. 누구는 1만 달란트를 탕감받아 자기 것으로 삼았고, 누구는 5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곤경에 처했다. 매정한 종의 비유가 우리에게 현실이 된 셈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1만 달란트를 탕감받아 손에 쥔 것을 능력이라며 부러워하고, 500만 원에 허덕이는 것을 무능력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부의 재분배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평균소득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는 1769만 가구이고, 가계부채는 912조 9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392조 원이라 한다. 이를 계산해보면 한 가구당 5100여만 원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2인 이상 가구의 한 해 평균 소득은 4600여만 원이라고 하며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대비 가계부채는 73.8%를 차지한다.
참고로 국내총생산은 외국인이든 우리나라 사람이든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나라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생산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영역 내에서 가계와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생산활동에 참여해 창출한 부가가치 또는 최종 생산물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합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지불되는 소득과 국내 거주자가 외국에 용역을 제공함으로써 수취한 소득도 포함된다.
하여튼 가계부채가 그렇게 많다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가계에서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멱살잡이 당하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갚아야 한다.
우리는 "삶이 고달프다.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그렇지만 과연 경기침체 때문만일까? 경기침체보다는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살펴봐야 한다. 적절한 법률적 구조로 통제하지 않는 무제한의 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필연적 귀결은 아닐까 돌아봐야 한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이들의 대문 밖에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많은 이들이 지친 몸으로 누워있다"(루카 16,19-21 참조).
[평화신문, 2012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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