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신부의 지상 교리] 선교, 본질을 묻는다
도심 속 자그마한 본당에 부임한 지 8개월쯤 되었다. 청주교구 소공동체 본당 1호라서 성당 규모는 매우 작다. 주차 공간은 아예 없고,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쩌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4-5m 높이 올려다보이는 성당 내벽은, 청주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예배당의 바깥 담벼락이기도 하다. 300평의 작은 성당은 옆에 붙어있는 4-5천 평의 예배당 정문으로 착각할 수도 있어서 가끔씩 개신교 신자들이 왔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신자들은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에 잘 적응된 모양이었다. 습관대로, 하라는 대로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에 망연자실함마저 감도는 분위기였다.
기쁨 가운데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도 기쁨과 감사를 찾기가 어려운 본당이었다. 믿음도 약한 공동체였다. 선교율도 매우 부진한 상태이고, 주일미사 참례와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가 전부인 이곳에서 사제로서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할 목적성을 찾는 것이 나의 큰 과제였다. 주일학교 아이들은 총 30여 명, 중고등부, 청년회는 미사도 모임도 없는 황무지와 같은 곳이었다.
선교에 앞서 소명을 깨닫자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명의 궁극 목표는, 바로 인간들이 사랑의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이루시는 친교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0항).
그러나 무작정 선교에 투신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명이었다. 소명이 사명으로, 사명이 선교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과제였다. 이러한 고민을 신자들과 나누고 실천한 결과, 부임한 지 4개월 만에 주일학교에 등록한 아이들이 110명으로 늘었고, 중고등부 미사와 학생회가 조직되었다. 작지만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성모 동산도 꾸미고, 내적 외적으로 변화된 공동체가 되었다.
종교는 두 가지 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본질(속성) - 그것이 무엇이냐?’이고, 다른 하나는 ‘기능(결과) - 그것이 무엇을 하는가?’이다. 전자는 신학자나 철학자가 고심하는 문제이고, 후자는 사회과학자가 고심하는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종교를 그 본질보다는 기능적 또는 결과적인 입장에서 연구한다.
나는 사목자로서 후자에 집중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봄이 오니 꽃이 핀다(신학, 철학).
꽃이 피니 봄이 왔다(사회학 일반).
봄은 과거에도, 10년 전에도, 올해도 왔다. 그때마다 꽃은 아니 피운 적이 없다. 예수님은 A로부터 Ω까지 오실 것이다. 아니 오신 적이 없고 그때마다 신앙은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꽃을 피우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우리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꽃과 향기를 피우지 못한다면 A요 Ω이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오시지 못하게 하는 것과도 같다.
많은 교구와 본당에서 선교를 강조하면서 물량과 수치로 선교율과 결과를 따진다.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에 집착한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집중하면 할수록 선교는 반비례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사도직 활동을 망가뜨리는 것은 과도한 선교, 외적인, 양적인 성장에 있을 수 있다. 물량과 수치로 계산하고 부풀린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성령 없이 하는 일일 수 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소명 피정을 통한 변화
내가 부임했을 때 우리 본당도 하드웨어에 집착했다. 성당 벽이 갈라지고, 비가 새고, 춥고, 외벽이 터져 축대가 무너지면서 신자들 마음도 갈라지고, 은총도 새어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가 나의 과제였다.
기도하면서 답을 구했다. 선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명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소명이 있을 때, 사명을 수행하게 되고,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자동 선교로 가는 길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부르심은 무엇인지, 응답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여정에 발을 내디뎠다. 세상을 향한 여정에 앞서 내면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본당의 모든 구역장과 반장을 대상으로 소명 피정을 하였다. 모세의 소명 기사를 시작으로 느헤미야 소명에 대하여 묵상하고 나누었다.
내면을 향한 여정 : 말씀, 묵상, 성찰,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 공동체 속에서 성숙, 소명 인식.
세상을 향한 여정 : 헌신(나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김), 비전(구체적 책임 완수), 사명 실천(하느님 나라 건설, 애덕 실천), 훈련과 반복(기쁨과 감사의 믿음).
비전의 큰 그림을 그려서 우리 공동체가 가야 할 길을 정했고, 방향을 지시하는 가치관과 원칙의 사명을 수행해 나가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훌륭한 리더라면 다른 사람이 자기 일을 찾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할 것이다. 신자들이 “우리가 열심히 했고, 우리의 소명을 깨달아 사명으로 연결시켜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라고 할 때, 그 사제는 자기의 소임을 성령의 도움으로 잘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영적으로 변화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믿음 공동체의 힘이 되는 것이다.
신앙은 현실이다
소명 의식, 사명 실천, 선교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having)가 아니라 존재(being)에서 나오는 힘이다. 끊임없이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가톨릭 정신을 지니고 실천하는 기초 신앙인이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또한 선교는, 옵션(선택의 자유)이 아니다. 돈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선교)은 사실의 한계를 넘고 초월하는 것, 탈출(exodus)에 가담하는 것, 감상(x)이 아닌 현실(o)이어야 한다.
우리 본당은 구역과 반원들의 간부화로 일대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작은 본당이지만 본당 신문도 펴내고 있다. 주일학교 아이들은 모두 신앙의 기자로 등록되어 배움과 믿음의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감사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마지막 힘이고, 불평은 내가 아니라 환경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부끄러움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선교에서도 더 노력할 것이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여러분이 할 일을 결정하십시오.
* 이길두 요셉 - 청주교구 신부. 교구 사회교정사목 초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개신동본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이길두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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