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52) 공동선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복음적이지 않은 오늘날의 경제활동
가톨릭 사회교리는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안에서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1891년 교회 최초의 사회회칙인 ‘노동헌장(Rerum Novarum)’이 발표된 이래 복음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교리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기업의 시대적 소명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교리의 핵심은 인간적이면서도 그리스도교적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인류 발전을 위한 공동선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듯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전 인류의 발전을 위한 모색이나 전망은 고사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포용 등 인간적인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시장경제 안에서 독과점이나 거대자본 등을 통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공포와 소비자들의 중독을 기제(機制)로 삼아 이기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상대방에 대한 강제와 착취까지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사회에 대해 지니는 책임은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대량 실업 사태, 장기 불황, 환경오염 등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익을 많이 내는 대기업이나 독과점기업 등에 오히려 더 큰 혜택을 주고, 무죄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한경쟁이 세계화하고 있는 글로벌시대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전쟁은 더 이상 독과점, 저임금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등 복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유지되는 경쟁력이 기업의 존립과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동선을 배제한 채 이뤄지는 기업활동이 벽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 월가로부터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부익부빈익빈 현상, 자연환경 파괴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렇듯 결코 지속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세계화 현실 속에서 기업이 갖는 사회적 사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그리스도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들 사이에 일어나 우리 세상에 신선한 생명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일궈나가고 있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은 새로운 시대에 참신하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유익과 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만이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이타적 기업 경영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더 앞세우는 이타적 모습의 사회적 기업은 자기중심적 경영패러다임을 초월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인간적 소통과 공감을 통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보다 높은 공동체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독일 성 베네딕도회 재정담당 책임자이자 영성의 대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는 “경영이란 다른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적 가치를 토대로 한 사회적 기업의 출현은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적 선택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괄목한 만한 실례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7월 15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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