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59) 상생의 발판 ‘사회적 기업’
‘고용 창출’ 교회가 관심 가지고 협력해야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형 사회적 기업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역사와 풍토가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이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은 물론 영국에서처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국형에 비해 ‘이탈리아형’ 사회적 기업은 소속 구성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전통적인 협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어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음미해볼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미 1980년대에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를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사회적 기업의 정의에 맞는 조직 형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은 1991년 제정된 ‘사회적 협동조합법’에 의해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사회적 복지, 건강, 교육 서비스 등을 담당하는 ‘A유형 조합’과 고용 창출에 중점을 두는 ‘B유형 조합’ 등 두 종류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B유형 조합은 취약계층(disadvantaged people)의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 소속 직원의 최소 30% 이상이 취약계층 노동자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어 2005년 ‘사회적 기업법’이 제정되어 복지 서비스, 노동 통합, 환경 서비스, 건강, 교육 등 이른바 ‘사회적 효용’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에 법적 인증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회가 발전시켜온 사회적 협동조합 모델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신뢰, 사회적 자본, 민주주의, 복지서비스 생산과 제공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진화된 모델로 평가됩니다. 이 사회적 협동조합은 집단적 이익(collective interest) 목적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영리 조직과 유사한 관리자산을 가지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에는 노동자를 비롯해 자원봉사자, 공공분야, 공동체 멤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함으로써 해당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특정한 요구에 적합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주된 전략은 서비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조합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 달성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내고, 주로 지역 단위에서 기업연합을 통하여 조직화하고 집단화하여 적절한 규모의 혜택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모여 지방, 나아가 전국적 차원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사회발전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다져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1980년대부터 발전해온 이탈리아 내 사회적 협동조합 컨소시엄은 2000년에 이르러 지역 명부(Regional Registers)에 오른 수만 총 207개에 이르고, 1998년 이후 5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회정책, 노동시장정책, 나아가 이탈리아 복지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과 그 대표가 지역사회의 범복지적 계획을 다루는 ‘위원회(table)’에 참여하는 일이 더욱 늘어나면서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정책입안가로서의 활동도 늘어나고, 이러한 경향은 더욱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2005년에는 7200여 개의 사회적 기업이 24만4000명에 이르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하니, 일자리 문제로 적잖은 모순과 어려움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가 눈여겨보고 도입을 시도하는 것이 사회복음화 과제 중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고용 창출에 교회가 관심과 협력을 기울이는 것은 안정적인 복음화 사업이 순항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9월 9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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