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5) 거리미사와 성체성사
예수님 희생 기억하는 미사, 사회적 약자에게 눈 돌려야
지금 이 땅 곳곳에서 길거리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작은 고을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서울시청이 보이는 대한문 앞에서, 한강 상류 두물머리 강가에서, 청춘의 상징이었던 통기타를 제조하는 콜트콜텍공장 한 모퉁이에서, 그렇게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거룩함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거룩함'이 참 익숙하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경ㆍ성당ㆍ성가처럼 책과 장소와 음악에도 거룩함을 수식하고, 성품ㆍ성직자ㆍ성인처럼 사람과 직분에도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과 피에도 '성체'와 '성혈'처럼 거룩함을 수식한다. 그러나 익숙한 거룩함은 더는 거룩함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 발에 밟힌 그곳, 자동차 소음과 수많은 행인의 분주함으로 어지러운 그곳, 무심히 흐르는 강 주변에 잡초가 제멋대로 자란 곳, 기계소리로 어수선한 곳, 그곳을 우리는 거룩한 곳, 곧 성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부르는 노래를 성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읽는 하느님 말씀을 성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 모인 이 사람 저 사람을 모두 성도(聖徒)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곳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성찬례라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나누는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이라 할 수 있을까?
희생이란 말의 라틴어 어원은 '거룩함을 행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성(聖)과 속(俗)은 같은 내용의 두 이름인 셈이다. 거룩함은 희생을 구성하고, 행동은 거룩함과 짝을 이룬다. 우리는 그 전형을 성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서 거룩하기도 하겠지만, 그분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이웃을, 그것도 보잘것없는 이를,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스스로 내어놓는 그 희생 때문에 거룩하다. 세상이 내버린 이들, 세상이 무능하다고 낙인 찍은 이들, 거추장스럽다며 사라져줬으면 바라는 이들, 그 보잘것없는 이들 가운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맡기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렸기에 거룩하다.
희생이 없는 거룩함은 단순한 상징이며 표지에 불과하다. 상징과 표지는 실재가 아니다. 전통적 교리로 따지자면 성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그 희생(거룩한 행위)을 기억하며 그 희생에 동참하고 동행하지 않는 성찬례는 성찬례(성사)가 아니다. 우리들의 상징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은 누구일까? 우리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 우리와 모든 이를 위해 피 흘린 예수님, 그 예수님이 우리가 기억할 예수님 아닌가. 그리고 그 예수님은 "배고프고 목마르며, 헐벗고 떠돌아다니며, 병들어 누워있고 감옥에 갇힌 이", 그러니까 사회적 약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예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 사회적 약자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당부하신 최후의 유언은 떠올려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당신 몸을 내어주고, 피를 흘리신 그것을 우리보고 계속해달라고 당부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성과 속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전국 방방곡곡 성당에서 성음악과 함께 성스러운 미사가 매일 봉헌된다. 또한 방방곡곡에서 예수님의 벗들은 배고프고 목말라하며, 헐벗고 떠돌며, 아파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예수님의 벗을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를 신기한 듯 바라보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미사를 길거리에서 하느냐"고 마뜩잖아 한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한다"(「교회헌장」 8항).
[평화신문, 2012년 9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