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선행을 하고, 언젠가는 하늘나라에 가려고 이 세상에서 삽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항, 358항)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가 그분에게로 되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원은 부모를 넘어서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언젠가는 그분의 영원하고 무한한 행복에 이를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창조주를 가깝게 느끼기도 하지만, 그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본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드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하시며, 우리를 참된 삶으로 확실하게 이끌고 계십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십니다.
2.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자유와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1-3)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차고 넘칩니다. 그는 자신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런 태도는 창조주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은 신비로운 분이시지만, 우리는 그분에 관해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차고 넘치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당신의 끝없는 기쁨을 당신 사랑의 피조물인 우리와 나누고자 하셨습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우리 마음에 당신을 찾고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을 우리 마음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이러한 열망을 우리는 종교라 부릅니다.(27-30)
인간이 하느님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은 진리와 행복을 얻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국 우리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전적으로 만족시키며 당신의 사업에 우리를 전적으로 쓰실 존재를 찾아 나서게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에디트 슈타인 성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기쁨의 원천… 하느님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신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불성실함과 죄를 능가하고 용서하심을 확신하는 데 있습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2006년 1월 6일)
4. 우리는 이성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나요?
▲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31-36,44-47)
이 세상은 그 근원과 목적이 자기 안에 있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 발전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 즉 선은 행하고 악은 피하라고 경고하는 양심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소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7-28)
"인간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이성이며, 이성의 가장 높은 목표는 하느님을 깨닫는 일입니다."(알베르토 성인, 교회의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
5. 이성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하느님을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식하는 일은 인간의 영혼에 커다란 도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삶을 바꾸기 싫어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37-38)
6. 우리는 하느님을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또한 하느님에 관해 의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나요?
하느님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는 인간의 언어가 하느님의 위대함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사용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표현을 끊임없이 가다듬고 개선해야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그처럼 큰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들 사이에 더 큰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제4차 라테란공의회, 1215년) [평화신문, 2012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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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7. 하느님이 당신을 계시하셔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였나요?
▲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을 알게 되기를 몹시 바라셨기 때문에 당신의 모습을 계시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50-53항, 68-69항)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일 때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듯, 영원하고 신비에 넘치는 하느님이 사랑의 마음으로 당신 마음을 우리에게 열어 보이실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가장 속 깊은 생각을 알게 됩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거쳐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최종 계시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은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8.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당신을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셨나요?
▲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이 죄로 그분을 등졌을 때에도 여전히 인간들에게 신의를 지키는 분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54-64항, 70-72항)
하느님은 역사를 통해 당신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셨는데, 대체로 '야훼(YHWH)'라고 표기합니다. 이 야훼라는, 신비에 가득 찬 그분 이름은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는 뜻입니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와 계약의 쇄신을 호소하려고 끊임없이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또한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는 그 행복은 하나의 이름과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나자렛 출신 예수님이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2005년 8월 18일)
9.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냄으로써 하느님은 당신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시나요?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65-66항, 73항)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어디까지 이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집을 짊어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느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십니다.
10. 예수님을 통해 모든 계시가 완성되었나요? 아니면 그분 이후에도 계시는 계속 되나요?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66-67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가 완전해지고 완성됩니다. 우리가 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깊이 이끄십니다. … '사적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넘어설 수는 없으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적계시는 우리가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사적계시의 진실성은 교회가 심사합니다.
11.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참조)하고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합니다.(91항)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미신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 마더 데레사는 다음과 같은 멋진 비유를 하셨습니다. "당신은 전선들이 길 양편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지요? 전선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면 불을 켤 수 없습니다. 전선은 바로 당신과 나이고, 전류는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전류가 흐르게 하여 세상의 빛인 예수님을 밝힐 수도 있고,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여 세상에 어둠을 퍼뜨릴 수도 있습니다."
※ 선교 (mission, '파견'을 뜻하는 라틴어 'missio'에서 유래):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며, 예수님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들은 누구나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기꺼이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2. 우리는 참된 신앙을 어디서 배우나요?
▲ 우리는 참된 신앙을 성경과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傳承)에서 배웁니다. (76항, 80-82항, 85-87항, 97항, 100항)
신약성경은 교회의 신앙에서 나왔으며, 성경과 전승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통해 신앙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성경이 "양피지보다 교회의 심장에 더 먼저 기록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은 무엇보다 예수님과 살아 있는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삶을 이미 체험했습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에 변함없이 이어져 온 하느님과의 유대감을 배울 수 있도록 믿지 않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13. 교회가 신앙 문제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나요?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시고 그들을 진리 안에 머물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요한 14,17 참조), 신자 전체를 대변하는 교회는 신앙 면에서 틀릴 수 없습니다.(80-82항, 85-87항,92항, 100항)
제자들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생명에 이르는 길과 관련해 교회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신자들을 가르칠 직무를 주셨기 때문에, 교회에는 교도권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침묵하면 안 됩니다. 교회 개별 구성원들은 혼란에 빠지거나 심지어 큰 잘못을 저지를 수 도 있지만, 신자 전체로서의 교회는 결코 하느님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살아 있는 진리를 오랫동안 보전해 왔습니다. 보존해야 할 '신앙의 유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진리가 공식적으로 공격받거나 왜곡될 때, 교회는 레랭의 빈첸시오 성인의 말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든지 믿어 왔던 내용"을 다시 명확히 규명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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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성경은 진실을 담고 있나요?
▶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됐고, 하느님이 원저자이기 때문에 확고하고 성실하며 그르침이 없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 103-107항)
성경은 완성된 상태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받아쓰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된 것입니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십니다."(교의헌장 「하느님의 말씀」) 특정 본문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데 필요한 요소 하나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그래, 이 글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야.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거든!"이라는 의견이 일치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수많은 저서들 가운데 어떤 것이 실제로 성령의 영감을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4세기 이래로 이른바 성경의 정경으로 정해졌습니다. 정경(正經)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공식 인정된 거룩한 책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5. 교회에서 성경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나요?
▶ 교회는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습니다.(103-104항, 131-133항, 141항)
성체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제외하면, 교회는 성경을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장 공경합니다. 거룩한 미사에서 우리는 복음을 서서 듣는데, 우리가 듣는 인간의 말을 통해 하느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조언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그리스도 이후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불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6. 어떻게 하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나요?
▶ 성경을 올바로 읽는 방법은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이 쓰였듯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109-119항, 137항)
성경은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크나큰 사랑과 경외심으로 성경을 대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개괄적으로 읽어야 하는데, 세세한 내용을 보느라 전체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 핵심 신비인 예수 그리스도에 입각해 전체 내용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분에 관해서는 구약성경을 포함한 성경 전체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교회의 동일하고 활기찬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바로 그 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것을 비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비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쇠렌 키르케고르)
※ 구약성경(Old Testament, 라틴어로 '유산, 유언, 계약'을 뜻하는 'testamentum'에서 유래): 전체 성경 가운데 1부에 해당하며, 유다교 신자들의 성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구약성경은 모두 46권으로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돼 있습니다.
※ 신약성경(New Testament): 전체 성경 가운데 2부에 해당합니다. 신약성경 27권에는 그리스도교 원전들이 들어있는데, 4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서간, 가톨릭 서간, 요한묵시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7.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구약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구약성경을 이루고 있는 책들 또한 하느님 말씀이며 성경입니다. 만약 구약성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121-123항,128-130항,140항)
구약성경에서 신앙을 가르치는 긴 역사가 시작되고, 그 역사는 신약성경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며, 이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위한 서곡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도들과 지혜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특히 시편은 교회의 일상기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말씀하고 계시며, 오늘 우리와 이야기하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18.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신약성경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하느님의 계시는 신약성경에서 완성됩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는 4복음서는 신약성경의 핵심이며 교회의 귀중한 보물입니다. 복음서를 통해 하느님의 아드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 인간과 어떻게 만나고 계신지 드러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상황과 성령의 활동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들 편지에서는 인간 삶의 모든 모습이 그리스도의 빛 속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요한묵시록은 이 세상의 종말을 미리 내다봅니다.(124-127항,128-130항,140항)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의 거의 전부는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에 점점 더 깊이 연결됨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복음을 읽고 복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19. 성경에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성경을 어떻게 '진리'라 할 수 있나요?
▶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정확한 역사나 자연과학적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 저자들도 시대가 낳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문화적 관념을 공유했기 때문에 종종 그 시대의 오류에 지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느님과 구원에 이르는 길에 관해 인간이 알아야만 하는 내용을 틀림없이 확실하게 담고 있습니다.(106-107항, 109항) [평화신문, 2012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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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을 거실 때 우리는 어떻게 그분에게 응답할 수 있나요?
▶ 하느님께 응답한다는 것은 그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42-149항)
신앙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듣는 마음'(1열왕 3,9)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와 접촉할 길을 찾고 계십니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만남이나 감동을 주는 모든 자연체험,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 모든 도전과 고통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숨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당신 말씀이나 양심의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훨씬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마치 친구처럼 우리에게 말을 거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친구처럼 그분에게 응답하고 그분의 말을 믿으며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을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 그분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21. 신앙이란 무엇인가요?
▶ 신앙은 알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음과 같은 일곱 특징을 지닙니다.
· 신앙은 순전히 하느님의 전적인 선물이며 우리가 진심으로 그것을 청할 때 얻게 됩니다.
· 신앙은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초자연적 능력입니다.
· 인간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할 때, 신앙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명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예수님이 신앙을 보증하시기 때문에 신앙은 전적으로 확신할 만합니다.
· 신앙이 사랑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불완전합니다.
·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주의깊게 경청하고 기도를 통해 그분과 살아있는 관계에 머문다면 신앙은 성장합니다.
· 신앙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기쁨을 미리 맛보여줍니다. (153-165항, 179-180항, 183-184항)
많은 사람들은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알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말에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스카이다이버가 비행장 직원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낙하산은 확실하게 접어 놓으셨나요?” 이에 대해 비행장 직원이 “아마 그럴 걸요”라고 성의없이 대답한다면 스카이다이버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 친구에게 낙하산을 접어달라고 부탁한다면 같은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이지. 내가 직접 접었으니까. 믿어도 돼!” 그러면 스카이다이버도 “그래, 널 믿어”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앎을 훨씬 뛰어넘는 확신을 뜻합니다.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아브라함을 약속된 땅으로 이주하게 한 믿음이요, 순교자들을 죽음의 순간까지 견딜 수 있게 한 믿음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지탱해주는 믿음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사실들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오스트리아 철학자)
22. 믿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 믿는 사람은 하느님과 개인적이며 내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고, 하느님이 당신에 관해 계시하셨던 모든 내용을 믿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150-152항)
신앙생활 초기에는 종종 동요와 불안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와 정상적인 일의 진행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며 신비로운 것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현존을 암시하는 흔적들을 추적하고, 하느님께 말씀드려 보다가 마침내 자유의지로 그분께 따르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동감을 표시하고, 인생 전체를 그분에게 거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예수님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마더 데레사 복녀, ‘콜카타의 천사’, 수도회 설립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23. 신앙과 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나요?
▶ 신앙과 과학 중 어느 한쪽에서만 진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둘 사이에 풀리지 않는 모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59항)
과학적 진리와 상충하는 신앙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과학적 이성 둘 모두와 관련이 있는 단 하나의 진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신앙을 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성도 원하셨고, 그 이성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이 지닌 합리적 구조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과학을 요구하고 또한 장려합니다. 신앙은 이성에 의해 명백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성을 뛰어넘어 실재하는 것들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게 합니다. 신앙은 과학이 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 창조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과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자연과학 사이의 아무런 모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자연과학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염려하듯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으며, 서로 의존하고 보완합니다.”(막스 플랑크, 물리학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양자이론 창시자)
24. 나의 신앙은 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아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듯이, 아무도 혼자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이고, 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뤄 신앙생활을 합니다. (166-169항, 181항)
(…) 믿고자 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유하고 전파할 수 없는 신앙은 비이성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 신자들은 교회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는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신앙을 신자 각 개인에게 전해주고 신앙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며 빛을 발하게 해왔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공동의 신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 신앙의 불꽃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고 그들을 고무하듯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이 나를 지탱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전례에서 ‘저는 믿나이다’(크레도, Credo)로 시작하는 사도신경과, 본래 ‘저희는 믿나이다’(크레디무스, Credimus)로 시작했던 니케아 -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모두 사용함으로써 믿음의 주체인 ‘나’와 ‘우리’를 강조합니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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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25. 신앙을 정의(定義)하고 정형(定型)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신앙고백 양식도 구체화됐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신앙을 오래 응시하고 표현하며 배우고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찬양하고 실행하게 됐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0-174항)
확고한 형태가 없다면 신앙의 내용은 불분명해집니다. 그 때문에 교회는 특정 문구들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 문구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못 이해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것들입니다.(…)공통된 신앙은 교회일치를 위한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26. 신경(信經)이란 무엇인가요?
▶ 신경은 우리의 신앙 내용을 짧게 요약한 문구로, 이를 통해 모든 신자들은 공통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185-188항, 192-197항)
(…)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교회가 분열되기 전에 개최한 대공의회들(니케아공의회 325년,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 381년)에서 나온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을 표현하기 때문에 높은 명망을 지닙니다.
27. 신경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당부하셨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자들은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에게 특정한 신앙고백을, 다시 말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삼위일체)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188-191항)
(…) 교회의 모든 신앙고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기술한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신앙고백은 세상 창조주이자 수호자이신 성부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시작해, 세상과 우리 자신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 성자와 관련되며 교회와 이 세상에 현존하시는 성령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끝납니다.
28. 사도신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29.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30. 하느님은 오로지 한분이시라는 우리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만 계시고, 논리 법칙을 따르더라도 하느님은 오로지 한 분밖에 계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200-202항, 228항)
하느님이 둘이라면 하나는 다른 하나를 제한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둘 중 어느 누구도 영원하거나 완전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둘 중 어느 누구도 하느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9-30).
※ 일신론(monotheism, 그리스어로 ‘유일한 것’을 뜻하는 ‘모노스’와 ‘하느님’을 뜻하는 ‘테오스’에서 유래) : 하느님은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서 삼라만상의 최종적 근거라는 가르침입니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일신교에 속합니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18일]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 (6)
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31. 하느님이 자신의 이름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당신의 이름을 만드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3-213항, 230-231항)
하느님은 익명인 채로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단지 느껴지거나 추측할 뿐인 '더 높은 존재'로 추앙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알려지길 바라시고,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존재로 불리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당신의 거룩한 이름 '야훼'를 알려주셨습니다(탈출 3,14 참조).
※ 야훼 :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나는 있는 나"(탈출 3,14)라는 의미입니다. 유다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도 이 이름은 온 세상의 유일한 하느님, 세상의 창조주, 수호자, 계약의 상대자,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분, 판관, 구원자 등을 가리킵니다.
32. '하느님은 진리이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1요한 1,5). 그분의 말씀은 진실이며(잠언 8,7; 2사무 7,28 참조) 그분의 가르침도 진실입니다(시편 119,142 참조).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심으로써 당신 스스로 하느님의 진리를 보증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214-217항).
하느님은 검증할 수 있는 학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을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분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 당신을 입증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진실한'분이 아니시라면 신앙과 이성은 동시에 논의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진리는 신성하기 때문에 신앙과 이성 사이의 소통이 가능합니다.
33.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이 무한한 자비로움에 의해 떠받쳐지고 둘러싸여 있음을 의미합니다.(218-221항)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시라는 그리스도교 고백은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악 때문에 하느님이 정말 사랑이신지 믿지 못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신앙은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굳건하게 믿습니다.
"참된 사랑은 아픕니다. 그것은 예외없이 아픈 것임이 분명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애타는 일이고,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고 싶어합니다. 결혼한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자식에게 생명을 건네준 어머니는 많은 고통을 감수합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매우 잘못 이해되며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자 마더 데레사)
34. 하느님을 알게되었다면 무엇을 행해야 하나요?
▶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그 분을 자기 삶의 첫째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자기 원수까지도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222-227항, 229항)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나를 지으시고 원하셨으며 매 순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고 내 삶을 축복하시며 지켜주시는 분이 바로 여기에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신 손안에 두시고 나를 애타게 기다리시며 나를 충만하게 하시고 완성하실 뿐만 아니라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 바로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35.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한 분이신가요, 아니면 세 분이신가요?
▶ 우리는 한 분이지만 세 가지 위격을 지닌 하느님(삼위일체)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혼자가 아니시며,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고 계십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2005년 5월 22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 분의 서로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모습을 지녔지만 여전히 하나인 유일한 존재를 섬깁니다. 하느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아드님이신 그분이 하늘에 계신 당신 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에게 기도하셨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를 받습니다.
※ 삼위일체(Trinity, 라틴어로 '셋이 한 벌이 되는 것'을 뜻하는 'trinitas'에서 유래) :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현존하십니다. 영어에서 똑같이 '삼위일체'의 실재를 가리키는 'Triune God'과 'Trinity'가운데, 전자는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를, 후자는 세 위격의 구별을 강조합니다. 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삼위일체의 신비를 잘 드러냅니다.
36. 하느님이 삼위일체이심을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삼위일체이심은 신비에 속합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알고 있습니다.(237항)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느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추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신비가 지닌 합리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깨우쳐주신 대로 우리는 이미 구약성경(창세 1,2; 18,2; 2사무 23,2 참조)과 모든 피조물에서 하느님이 삼위일체라는 흔적을 발견합니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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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37.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당신의 피조물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피시기에 오직 그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흠숭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38-240항)
38. 하느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일을 할 수 있으신가요?
하느님은 무(無)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역사의 주인이시고 모든 일을 주재하시며 모든 일을 할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의 전능은 종종 사람들이 더 이상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39. 자연과학은 창조주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나요?
창조 이야기는 세상의 기원을 자연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이 세상과 하느님의 관계에 관한 신학적인 진술입니다. '창조되었다'는 것은 세상 만물이 지닌 영속적 특성이며 세상 만물에 관한 본질적 진리입니다.
40. 진화를 확신하면서도 창조주에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나요?
인간을 생물학적 과정의 우연한 산물로 여기는 진화론의 오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인간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의 존재와 본질, 가치, 사명, 의미와 목적에 관한 질문에 생물학적으로 답할 수는 없습니다.
41. 하느님은 왜 이렛날에 쉬셨나요?
하느님이 일을 마치고 쉬셨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노력을 넘어서는 창조의 완성을 의미합니다.(349항) 천상의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주일의 안식은 우리로 하여금 안식을 위해 채비를 갖추게 하는 노동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42.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 말고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자신의 현존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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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하느님은 이 세상과 내 삶을 이끌어 주시나요?
하느님은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 삶의 자잘한 일들까지 영향을 끼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좋고 나쁜 모든 일 안에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과 무의미해 보이는 우연 속에서도 존재하십니다.
44. 하느님의 섭리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하느님 뜻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는 것이 인간에게 더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해 행하실 때에도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행위를 하느님 활동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45.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데도 왜 악을 저지하지 않으시나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악에서 시작된 것은 없으며 악으로 끝나는 것도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은 최고 악으로부터 최고 선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최후 심판 때 모든 불의(不義)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46. 하늘나라는 무엇인가요?
▶ 하늘나라는 하느님이 계신 곳이며, 천사와 성인의 거처로 모든 피조물의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하늘과 땅'이란 말로 우리는 창조된 실재 전체를 표현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25-327항).
47. 지옥은 무엇인가요?
▶ 우리의 신앙은 최종적으로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즉 사랑에 대한 전적인 거부를 '지옥'이라 부릅니다(1033-1036항). 지옥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것을 '바깥 어둠'(마태 8,12)이라 칭하셨습니다.
48. 천사란 무엇인가요?
▶ 천사들은 순수하며 영적인 하느님 피조물로 이성과 의지를 지녔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갖지 않으며, 죽지 않고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328-333, 350-351항).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며 밤낮으로 그분을 위해 헌신합니다.
49. 우리는 천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나요?
▶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대변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334-336, 352항). 사람마다 하느님으로부터 수호천사를 얻습니다. 천사들은 소식 전달자나 도움을 주는 동반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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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요?
▶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인간을 지어내셨기 때문에(창세 1,27 참조) 피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43-344항, 353항)
51. 인간은 동물이나 다른 피조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통해 창조주를 공경해야 하며 피조물을 책임감을 갖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인간과 동물, 식물은 동일한 창조주를 모시고 있으며 그분은 사랑으로 그들을 지어내셨습니다. 따라서 다른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일입니다.(344항, 354항)
52.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됐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 하느님을 인격체라고 하듯이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인지하고 그들이 지닌 존엄성을 이해하며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창조주를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53.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은 "그 자체를 위해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이 천상의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54. 왜 예수님을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본보기라고 하나요?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참된 본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참되고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분이십니다. 인간은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들조차 죄인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인간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55.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나요?
▶ 인간은 모두 똑같이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원했기에 평등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세주가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기쁨과 영원한 천상의 행복을 하느님에게서 발견하게 돼있습니다. (360-361항) 따라서 모든 인간은 형제요, 자매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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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영혼이란 무엇인가요?
▶ 영혼은 개인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으로, 인간의 정신적 삶의 원리이자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통해 인간은 '나'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 개인으로 하느님 앞에 서는 존재가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62-365항, 382항)
57. 인간의 영혼은 어디에서 왔나요?
▶ 인간의 영혼은 부모가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창조하신 것입니다.(366-368항, 382항) '내게 영혼이 있다'는 말은 '하느님은 나를 생명이 있는 존재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만드셨고 당신과 끝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나를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58. 하느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사랑이며 공동체의 원형이신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심으로써 그들이 함께 당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모상이 되게 하셨습니다.(369-373항, 383항) 하느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셔서 인간이 다른 성과의 만남을 통해 충족감과 온전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신의가 있는 것처럼 부부도 사랑의 신의를 지키려 애씁니다. 부부의 사랑은 하느님의 본성을 닮아 창조적인데 그것은 혼인을 통해 새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59. 교회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요?
▶ 교회는 창조 질서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특질이 필요하고 상호관계를 지향하게 돼 있으며, 그를 통해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성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2358-2359항)
60.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본래 하느님 계획에 포함돼 있었나요?
▶ 하느님은 인간이 고통받고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본래 계획은 낙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원한 삶과 하느님ㆍ인간ㆍ환경사이의 평화,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화입니다.(374-379항, 384항, 400항) 노동의 고됨과 고통, 죽음, 죄에 대한 유혹은 낙원의 상실을 드러냅니다. [평화신문, 2013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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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죄란 무엇인가요?
▶ 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분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데서 나타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85-390항) 죄는 잘못된 행동 이상이므로 정신적 나약함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선한 것을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모든 행위, 완전한 선이신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죄의 본질에 해당합니다. 그분은 죄의 치명적 위력을 스스로 떠안으셔서 그것이 우리를 덮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62.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는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죄는 엄밀한 의미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잘못을 뜻합니다. 따라서 '원죄'라는 말은 개인이 범한 죄가 아니라 개인이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죄를 범하기에 앞서 누구나 타고나는 인류의 비구원적 상태를 의미합니다.(388-389항, 402-404항)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원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상징들에서 볼 수 있는 독약 같은 사고방식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 대신 거짓을 신뢰했고 그래서 자기 삶과 더불어 공허함과 죽음으로 떨어졌습니다."(2005년 12월 8일)
63.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원죄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고 죄짓는 성향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 도우심으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405항)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고 어리석으며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실제로 끊임없이 죄를 짓게 됩니다. 그 밖에 강요된 죄는 죄라고 볼 수 없는데,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해야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64. 하느님은 악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어떻게 구해 내셨나요?
▶ 하느님은 죄의 연쇄 반응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을 서서히 파괴해 나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410-412항, 420-421항)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로마 6,23 참고). 그러나 우리에게 친구요 구세주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연대감은 죄의 또 다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원죄를 '복된 죄(felix culp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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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65.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소식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나자렛 출신 유다인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마태 16,16)으로서 인간이 되신 분임을 증언합니다.
66.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지녔나요?
▶ 히브리어로 '예수'는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430-435항, 452항)
67. 예수님에게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히브리어의 '메시아'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나자렛 출신 평범한 목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436-440항)
68.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을 파견한 신적 근원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다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9.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그로써 우리의 형제가 되셨습니다. 451년 칼케돈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거나 뒤섞이지 않고' 결합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464-467항) '신앙의 기준'을 지키고 있는 이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이 지닌 신비를 발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70. 예수님도 우리처럼 영혼과 정신, 육체를 지니고 계셨나요? 예수님을 오로지 '신비'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470-476항)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 있는 뛰어난 존재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저 신비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실재들을 그분의 삶에서 보게 됩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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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71. 성모님을 동정녀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성모님의 동정성은 낡은 신화적 상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초창기부터 논란이 있었지만, 성모님의 동정성이 그저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교회는 항상 믿어 왔습니다.
72. 성모님에게 예수님 이외에 다른 자녀가 없었나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이 유일하게 낳으신 외아드님이십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00항, 510항) 초창기부터 교회는 성모님의 동정성을 근거로 예수님의 친형제자매를 배제해 왔습니다.
73.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인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아드님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495항, 509항) 성모님은 그저 한 인간을 낳으셨을 뿐이며 태어난 후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느님의 참된 아드님이셨습니다.
74.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 시태)'란 말은 무슨 뜻인가요?
▶ 교회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을 고려하여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게 유례없는 총애를 베푸셨다는 것과 그리해 그분이 잉태하신 첫 순간부터 원죄로 말미암은 그 어떤 손상도 받지 않고 온전하게 보호됐음을 믿고 있습니다.(487-492항, 508항)
75. 성모님은 그저 하느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나요?
▶ 성모님은 그저 수동적이기만 한 하느님의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성모님의 능동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하느님은 인간이 될 수 있으셨습니다.(493-494항, 508-511항)
76. 성모님이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삼으셨기 때문에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963-966항, 973항) 우리는 성모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우리를 대신해 하느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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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예수님이 30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사셨고, 그로써 우리의 일상을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31-534항, 564항)
78.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도 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나요?
▶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님은 인류 전체가 속해 있는 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분은 표징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범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언젠가 죽음 속으로 빠져들겠지만, 당신 아버지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하실 것입니다.(535-537항, 565항)
79.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유혹받는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했나요?
▶ 예수님이 실제로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은 그분이 진정한 인간이셨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히브 4,15) 구세주를 발견하게 됩니다.(538-540항, 566항)
80.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시나요?
▶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들입니다.(541-546항, 567항)
81. 예수님은 실제로 기적을 행하셨나요? 아니면 그저 신앙심을 강조하기 위해 꾸며 낸 이야기에 불과한가요?
▶ 예수님은 실제로 기적을 행하셨고, 사도들도 기적을 행했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실제 사건들을 전합니다.(547-550항)
82.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기적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시며 당신에게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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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83. 예수님이 사도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은 열두 사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으며,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고 새로운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그분의 사명을 계승했습니다.
84. 그리스도가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예수님이 지니신 신적 영광을 그분 현세의 삶에서 드러내고자 미리 계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나중에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54-556항, 568항).
85.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당신이 죽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나요?
▶ 그렇습니다. 당신이 의도를 갖고 스스로(루카 9,51 참고) 당신 수난과 부활의 장소로 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당신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557-560항, 569-570항).
86. 예수님이 당신 죽음과 부활의 날로 유다교의 파스카 축제일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예수님은 더욱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됐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의 종살이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해 주셨습니다(571-573항).
87. 예수님처럼 온유한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여러 측면에서 예수님은 유례없이 당시 전통적 유다교에 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는데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안식일 계명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셨고,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의혹에 휩싸이셨으며 거짓 예언자라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사형에 처해야 하는 위법 행위였습니다.
88.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책임이 있나요?
▶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연대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모든 죄인이 예수님의 죽음에 연루돼 있다고 고백합니다(597-598항). [평화신문, 2013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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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의 죽음을 의도하셨나요?
▶ 예수님이 비극적 외부 상황들 때문에 끔찍한 죽음을 맞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사도 2,23) 사람들 손에 넘겨지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99-609항)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었지만, 그것이 그분이 바라셨던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죽음을 그분의 생명과 맞바꿀 수 있게 됐습니다.
90. 최후의 만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에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고, 성체성사와 새 계약의 사제직을 세우셨습니다(610-611항).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11,24) 하고 당부하심으로써 그들을 새 계약의 사제들로 삼으셨습니다.
91.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올리브 산 위에서 실제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셨나요?
▶ 예수님은 진짜 인간이셨기 때문에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실 때 죽게 되실 것을 진정으로 두려워하셨습니다(612항). 우리가 지닌 것과 똑같은 인간의 의지력으로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라는 성부의 뜻에 따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92. 예수님은 왜 하필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나요?
▶ 예수님이 죄 없이 처참하게 처형되셨던 십자가는 가장 극심한 굴욕과 고립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세상의 고통을 겪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분은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 세상을 다시 하느님에게 데려오셨습니다(613-617항, 622-623항).
93. 우리가 삶의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시 말해 '우리의 십자가를 짊으로써'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고통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만,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마주치는 경우 그것을 그리스도가 겪으셨던 고통과 일치시킴으로써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94. 예수님은 실제로 돌아가셨나요, 아니면 그저 돌아가셨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부활하실 수 있었던 건가요?
▶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그분의 시신은 매장됐습니다. 성경의 모든 원전들이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627항). [평화신문, 2013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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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도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할 수 있나요?
▶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가톨릭교회 교리서」 631,638,651항)
96.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믿게 됐나요?
▶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그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목격하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그분이 살아 계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됐습니다(640-644항, 656항).
97.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있나요?
▶ 예수님의 부활을 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동 시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부활 사건을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으로 매우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639-644항, 647항, 656-657항).
98.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현세에서 지녔던 신체적 상태로 되돌아가셨나요?
▶ 제자들이 그분의 육신을 만질 수 있었음에도 그분의 육신은 더는 현세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성부의 신성한 영역에 속한 것이기도 했습니다(645-646항).
99. 부활을 통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했나요?
▶ 모든 것이 이제 더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는 기쁨과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은 더는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하기"(로마 6,9) 때문에, 죽음은 또한 예수님에게 속해 있는 우리 위에도 군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655, 688항).
100. 예수님의 승천은 무엇을 뜻하나요?
▶ 신약성경에 따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당신 제자들과 특별히 가깝게 지낸 40일간의 시간은 그분의 승천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기간을 마무리지으며 그리스도는 온전한 인간성을 지니신 채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이란 이 세상에서 더는 예수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1. 우리와 온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은 어떤 모습으로 이뤄지나요?
▶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도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잣대로 모든 인간과 사물, 생각과 사건에 관한 완전한 진실이 밝혀집니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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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성령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성령도 하느님으로 흠숭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시고 이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믿는 것을 뜻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83-686항).
103. 예수님의 삶에서 성령은 어떠한 역할을 하셨나요?
▶ 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예수님의 삶에서 우리가 '성령'이라 부르는 하느님 영의 현존이 드러났습니다(689-691항, 702-731항).
104. 성령은 어떤 이름과 표징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시나요?
▶ 성령은 비둘기의 형상으로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성령을 묘사할 때 상처를 낫게 하는 연고나 살아 있는 물, 휘몰아치는 폭풍,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호자, 위로자, 교사,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교회가 베푸는 성사에서 신자들은 안수와 도유(기름 부음)를 통해 성령을 받게 됩니다(691-693항).
105. 오순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 주님은 부활하신 지 50일이 지났을 때 하늘로부터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보내셨습니다. 이로써 교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순절에 제자들 말이 각 지방 말로 들리게 되는 언어의 기적은 교회가 그 시초부터 모든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06.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나의 삶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 성령은 교회를 세우고 움직이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지닌 선교 사명을 일깨우십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과 점점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내 마음을 열어주시고, 나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십니다(733-741항, 747항). [평화신문, 2013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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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교회'란 무엇인가요?
▶ 교회는 그리스어로 '불러 모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믿고 있는 우리는 모두 주님이 불러 모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모두 교회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48-757항). 교회는 사람들이 멀리하는 공공 기관이나 제도 교회에 불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 인간들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108. 하느님이 교회를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느님은 우리를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한꺼번에 구원하길 바라시기 때문에 교회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인류 전체를 당신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758-781항, 802-804항).
109. 교회가 지닌 사명은 무엇인가요?
▶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가 모든 민족에게서 싹트고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763-769항, 774-776항).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며 교회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모든 약점에도 현세에 존재하는, 하늘나라의 굉장한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0.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지닌 유일무이한 특성은 무엇인가요?
▶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은 세례입니다. 이 백성의 창시자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이고, 그 우두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며, 그들의 힘의 원천은 성령이십니다(781-786항).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 덕분에 우리는 아무것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11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 무엇보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마치 우리 몸의 머리와 팔다리처럼 그분과 우리를 연결하고 하나로 만들어줄 만큼 그 관계는 매우 견고합니다(787-795항).
112.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란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어렴풋하게나마 사랑이 무엇인지 압니다. 사랑이 뭔지 아시는 예수님은, 간절한 사랑으로 신부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그녀와 함께 혼인잔치를 벌이려는 신랑에 당신을 비유하십니다. 그분의 신부는 바로 우리며 교회입니다. 구약성경도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에 비유합니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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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오로지 하나인 교회만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는 오로지 한 분뿐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오직 하나요, 그리스도의 신부도 오직 하나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오직 하나만 존재합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통입니다. 이 둘이 함께 '온전한 그리스도'를 이룹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지역 교회(교구)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교회만이 존재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11-816항, 866항, 870항).
114. 가톨릭교회가 아닌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나요?
▶ 세례받은 모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소속됩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전체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교회에서 세례받은 신자들도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며, 그런 이유에서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817-819항). 인류 구원을 위해 성령은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에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115.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게"(요한 17,21) 해달라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과 행동으로 따라야 합니다(820-822항).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일치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와 관련된 일입니다. 일치는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에게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16. '보편된 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보편적'이란 말은 전체와 관련돼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신앙을 고백하고 모든 성사를 보존하고 거행하며,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교회를 부르셨고 모든 민족에게 교회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보편적인 속성을 지닙니다(830-831항, 849-856항).
117. 교회는 유다인들과 어떤 관계에 있나요?
▶ 유다인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손위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느님이 그들을 먼저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는 유다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와 그들을 하나로 엮어 주지만,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살아 있는 아드님이라는 교회의 고백과 관련해서는 우리와 유다인은 구분됩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최종적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그들은 하나입니다(839-840항). [평화신문, 2013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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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시작됐고 그들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57-860항, 869항, 877항). 예수님은 사도들을 당신의 전권 대리인으로 삼아 온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안수를 통해 자신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에게 자신들이 지녔던 사명과 전권을 전해 줬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사도 전승이라 부릅니다.
119.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 교회에는 평신도와 성직자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똑같은 품위를 지녔습니다. 그들의 품위는 똑같지만, 그들이 받은 사명은 서로 다릅니다. 평신도의 사명은 온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데 있습니다. 성직자는 교회를 이끌고 가르치며 거룩하게 할 직무를 지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므로 그들은 모든 이들의 종이 돼야 합니다. 평신도와 성직자 중에는 수도자들처럼 정결, 청빈, 순명을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871-876항, 934-935항).
120. 평신도의 소명은 무엇인가요?
▶ 평신도는 하느님 나라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사회 속에서 힘써야 할 소명을 지닙니다(897-913항, 940-943항). 평신도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일반 사제직 또는 공통 사제직) 사제 아래 위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121. 교황의 직무는 무엇인가요?
▶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요 주교단의 수장으로서 교황은 교회의 일치를 보증합니다. 교황은 가장 큰 사목 권한을 행사하며 교리와 규율을 결정하는 데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닙니다(880-882항, 936-937항).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를 사도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끌었으며 그가 순교한 장소이기도 한 로마 교회는 그가 죽은 후 초대 교회의 내적 기준점이 됐습니다.
122. 교황은 정말로 오류를 범할 수 없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교황은 오로지 장엄한 교회 의식을 통해 교의를 선포할 때만 무류성을 지닙니다. 공의회의 결정과 같이 주교단이 교황과 하나 돼 내리는 교도권적 결정도 무류성을 지닙니다(888-892항). 교황의 무류성은 그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다거나 지적 능력이 완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존재는 교회입니다. 자명한 신앙 진리를 갑작스레 부정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경우 교회는 무엇이 진실하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를 구속력 있게 선언하는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황이 지닌 결정권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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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무엇을 믿고 있는가?
123. ‘모든 성인의 통공’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성인들의 공동체’에는 이미 죽었거나 아직 살아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고 세례를 통해 그분에게 속하게 된 모든 사람이 소속돼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46-962항). 우리는 죽음을 뛰어넘어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도 대신 은혜를 빌어 달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우리는 우리의 청원 기도를 통해 아직 연옥의 정화 과정 중에 있는 죽은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124. 성모님이 모든 성인 중에서도 탁월한 지위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은 지상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예수님과 연결돼 있고 그 긴밀한 관계는 하늘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늘의 여왕이시며, 당신의 모성으로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972항).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 어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머니’가 되시므로 우리는 매 순간 그분에게 조언과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2005년).
125. 우리는 성모님도 흠숭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흠숭의 대상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모님을 우리 주님의 어머니로 공경합니다(971항). ‘흠숭’이라는 말은 모든 피조물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숭고함을 겸손하게, 아무 조건 없이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서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십니다.
126. 교회는 실제로 죄를 용서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할 사명과 권한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981-983항, 986-987항). 사제의 직무 수행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용서를 받게 되며 죄는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소멸합니다.
127.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면 우리가 죽을 때 그분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마중 나오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데려가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05-1014항, 1016항, 1019항). [평화신문, 2013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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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영원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되나요?
영원한 삶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됩니다. 그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며 끝이 없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20항).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이른바 '사심판(私審判)'을 받게 됩니다. 최후 심판 또는 종말 심판이라 부르기도 하는 '공심판(公審判)'은 세상이 끝나는 날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열립니다(1021-1022항).
129. 하늘나라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하늘나라는 사랑의 순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우리 영혼이 사랑하면서 평생 찾았던 하느님에게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에 관해 그리고 하느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습니다(1023-1026항, 1053항).
130. 연옥이란 무엇인가요?
연옥은 종종 어떤 장소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이나 주위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는 먼저 정화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연옥입니다(1030-1031항). 우리는 자신의 악한 행실이나 사랑을 담지 않고 한 행동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과 뼈아픈 후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정화의 고통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이 넘치는 그분의 시선을 천상의 순수한 기쁨 속에서 마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31. 우리는 연옥 상태에 있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세례 받은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연결돼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단식과 기도, 선행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성제의 성체성사를 통해서 죽은 이들을 위해 은총을 청할 수 있습니다.
132.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어떻게 지옥이 존재할 수 있나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거부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자신을 배제함으로써 자유 의지로 자신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앗아간 존재는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1036-1037항). 하느님은 가장 나쁜 죄인과도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하셨고, 인간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도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하늘나라 대신 지옥을 선택할 때에는 사랑의 행위자인 하느님조차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십니다. [평화신문, 2013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