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해설 16] “우리 주님” - ‘하느님의 종’
‘주님’ 칭호는 구약의 ‘야훼’와 같은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 모두에게 부여되는 명칭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에게만 적용되지만 오늘날에는 신성을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성부와 성령에게도 붙여진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같은 흠숭을 받으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전례 중에 예수님을 주님이라 호칭하지만 그분의 생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영광스럽게 되심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주님이라 불리셨다. 하느님의 주권을 뜻하는 칭호로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면서 그분만을 섬기겠다는 충성서약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은 승천으로써 하느님의 주권을 회복하셨고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분, 만유로부터 흠숭을 받으시는 ‘세계의 주인’ 곧 ‘구원주’가 되신다.
생전에 예수님은 대개 ‘랍비(스승님)’라 불리셨는데, 성경에는 간혹 생전에도 ‘주님’이라 불리셨다. 주로 사람이 위기나 위험에 처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긴급 도움이나 구원을 받고자 할 때 주님이라 불렀다. 제자들이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는 동안에 거세게 불어닥친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예수님이 갑작스레 출현하셨다. 호수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한 제자들을 향해 그분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고 하셨다. “나다.”는 말은 구약의 ‘야훼’ 하느님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이 말로써 예수님은 막강한 권능과 힘으로 자연을 제압하시는 야훼와 같은 주님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때 베드로는 야훼를 대하듯이 예수님을 향해 용기를 내어 감히 청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베드로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이집트의 압제에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야훼를 상기하면서 그같이 간청한 것이다. 가나안 여인도 마귀들려 고생하는 딸의 치유를 위하여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 15,22-25) 하고 간구하였다. 우리가 예수님께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승복하면서 최대의 존경과 흠숭을 드리고 싶을 때, 위급하고 어려운 처지에서 그분께 도우심을 청하려 할 때 ‘주님’하고 부르며 간청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하고 기도를 마감한다.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하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다.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3) 예수님은 최후 만찬 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자신이 보여준 본을 그대로 실행하라는 뜻으로 그같이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생전에 오해를 살 수도 있었으므로 ‘주님’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주님으로서의 의식을 분명히 지니고 말씀하고 행동하셨다. 반면 주님이신데도 그분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주인으로보다는 종, 머슴으로 처신하셨다. 세족례 때에도 주인이나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종이나 하인으로서 처신하셨다. 주인으로서 제자들을 만찬에 초대하셨으나 발씻음을 통하여 일생 머슴처럼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과 인간을 섬겨왔음을 드러내셨다.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다.”(마르 10,45) 세례 때 예수님이 들은 하늘의 음성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는 말씀은 ‘하느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수행하며 걸어갈 앞길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여기 있는 나의 종은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이사 42,1라는 ‘하느님의 종’에 관한 예언을 그대로 인용한 말씀이다.
[2008년 8월 24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8면, 최영철 알폰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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