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해설 24]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 역사의 주님
신경은 예수님이 수난하고, 죽고, 묻히신 역사적 시점을 명시한다.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기간 중 빌라도 총독이 유다 땅을 지배하던 때에 수난과 죽음이 발생하였음을 밝힌다. 총독이 잘못 통치하였기 때문에 그분이 수난하고 죽으셨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그 중요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심과 평가의 반영이다. 예수 탄생의 때에 관해서도 성경은 아우구스투스 1세가 황제로, 대 헤로데가 왕으로 통치할 때임을 강조한다(루카 2,1).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언하면서 제일 먼저 때를 언급하셨다. “때가 찼다.” 때에 대한 발언들이 성경에 나온다.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때가 왔습니다.”(17,1) 예수님은 하느님이 정하신 때를 향해 나아가며 또 그 때에 따라 움직이셨다. 그분은 항상 때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지니고 활동하셨다.
그리스도교는 경전(성경)만의 종교가 아니라 역사의 종교이다. 성경은 역사서다. 이스라엘과 예수님과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경전이다. 하느님의 구원과 계시가 역사 안에서 발생했으므로 그것들을 기록한 성경은 당연히 역사적 특징을 지닌다.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예수님 교회의 역사를 통해 구원하셨으므로 그리스도교는 고유한 역사관을 지닌다. 역사는 인간이 엮어가지만 하느님께서 그 주인이시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역사의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된다. 그 활동 시기는 소위 ‘제2의 출애굽’ 시대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에 신음하고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듯이, 예수 시대는 유다 땅이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분열과 부정, 부패와 위선이 득세한 시기였다. 대립과 충돌의 시기에 예수님은 태어나고 활동하셨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다.”(갈라 4,4) ‘율법 아래’ 즉, 역사의 지배하에 놓이셨다. 세속정치에 스스로 속박되셨다. 그분은 베들레헴 출생 때 황제의 호적등록 칙령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분은 두 가지 흐름의 때에 속하셨다. 세속 정치의 때와 하느님이 정하신 때에 따라 활동하셨다.
역사를 초월하시고 주관하시는 예수님이 역사 안에 들어와서 속박당하셨다. 그 당시 역사 안에서 성행하던 거짓, 불의, 부패에 희생당하여 수난하고 죽으셨다. 그분은 식민통치로 인해 생겨난 계층들 간의 분열과 대립, 불신 그리고 혼란과 무질서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되셨다. 역사의 희생양이 되심으로써 인류 역사를 온갖 속박에서 구원하셨다. 역사를 온갖 제약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역사의 지배를 받으셨다.
“이 자가 ‘나는 하느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였다.”(마태 26,61) 예수님이 유다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는 동안 거짓 증인이 나서서 그같이 증언하였다. 그분은 유다 법정엣 성전과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고발당하고 사형언도를 받으셨다. 그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는 예수님 자신이다. 그분은 탐욕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깨끗이 하려함으로써 성전의 이권에 깊이 관련된 당국자들을 화나게 하셨다. 이 ‘성전정화’는 그분이 고소와 재판, 처형의 구실을 스스로 제공해 주신 사건이다. 그분은 세속정치가 지배하는 역사의 흐름에 떠밀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흐름에 저항하면서 역사에 책임을 다하셨다. 그런데 그 역사는 정의와 진리가 다스리는 질서와 평온의 시기가 아니었다. 거짓과 불의, 대립과 혼란이 난무하던 시대에 그분은 투철한 의식을 갖고 충실히 사명을 수행한 결과 폭력과 불의에 희생되셨다. 억압된 역사를 구하기 위해 그분은 스스로 역사에 속박되었고, 그 역사에 신실하신 결과로 무참히 살해되셨으나 마침내 역사의 주인이 되셨다.
[2008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주일) 가톨릭마산 8면, 최영철 알폰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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