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3) ‘공동선’ 고려하는 협동조합
축구 명문 ‘FC 바르셀로나’가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협동조합은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지만 이윤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고 공동선을 먼저 고려합니다. 협동조합이 잘 발달돼 있는 국가와 지역에서 그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동네의 가게나 가까운 편의점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오렌지주스 썬키스트(Sunkist)가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양(Sun)의 입맞춤(Kissed)’이라는 뜻을 지닌 썬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오렌지 브랜드입니다.
1877년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개통은 캘리포니아에만 국한되었던 감귤 소비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는데, 감귤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감귤 재배농가들은 오히려 도매상들의 횡포에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1893년, 감귤 재배농가들이 ‘남부 캘리포니아 과일거래소’를 만들어 감귤의 판매와 유통사업을 직접하게 됩니다. 1905년에는 조합원이 5000여 농가로까지 늘었는데 이는 감귤산업의 45%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거래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 썬키스트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썬키스트협동조합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6000여 감귤 재배농가를 조합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고급 오렌지의 대명사가 된 썬키스트, 오렌지를 직접 재배하고 유통하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었습니다.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예로 꼽히는 곳 가운데는 축구클럽도 있습니다. 세계적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도 실제로는 17만3000여 명의 조합원이 운영하는 축구협동조합입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는 1899년 11월 29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탄생합니다. FC 바르셀로나는 1936~1939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중 클럽의 회장이 프랑코군의 공격에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는데, 일종의 ‘시민 정신’을 대표하는 축구팀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후, 협동조합의 형태로 이 정신을 계승하게 됩니다. 다른 축구팀들과는 달리 FC 바르셀로나는 출자자인 시민이 주인입니다. 보통의 스포츠구단이 기업이 주인이 되어 경영에 참여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따라서 구단주 격인 회장도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뽑습니다. 회원 중 가입경력 1년 이상이면서 18세가 넘는 이라면 누구나 6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회장 선거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투표 권한을 갖게 됩니다.
FC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110여 년간 유니폼에 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스포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시민구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포츠정신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지닌 FC 바르셀로나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빈국을 돕는 일을 통하여 전 세계적인 아동문제에 참여하면서 매년 거액을 후원하기도 하는 등 가난한 이들과 공존 공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협동조합의 존재는 사회적 경제의 풍토가 아직 척박한 우리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주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선한 의도를 갖고 사회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면, 하느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내려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25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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