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8)
10. 교도권과 초자연적 신앙 감각
1) 교도권(敎導權)의 중요성
지난 주에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거를 성경에서만 찾는 것은 문제가 있고, 성경과 성전을 함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성경과 성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의 근본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제3의 요소, 즉 교도권이 필요합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85항).
교도권은 성경과 성전을 해석하는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성경과 성전이 우리 신앙의 원천이고 근거이지만, 성경과 성전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교도권이 필요합니다.
개신교회는 각자가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느낌과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성경 구절을 읽어도 수많은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때문에 개신교회는 각자의 생각을 주장하게 되고 결국 수많은 분파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가톨릭 교회의 성경 해석은 공식적 해석과 개인적 해석을 구별합니다. 개개인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느끼는 것은 자유롭게 해도 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공식적인 해석은 교황님과 주교님들이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일치된 의견으로 가르치는 바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도권에 따른 해석입니다. 신자들은 이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가톨릭교회교리서 87항).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법에 의해 규정됩니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법전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나 법전을 해석하고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사회생활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법전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법관들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경과 성전의 해석도 이와 비슷합니다.
2) 성경과 성전에 봉사하는 교도권
성경과 성전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교도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교도권은 성경과 성전 위에서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됩니다. 교도권은 오히려 성경과 성전에 봉사하는 교회의 직무입니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86항).
교도권이 성경과 성전에 올바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교회 지도자들이 하느님께 끊임없이, 겸손되이 배우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3) 초자연적 신앙 감각
교도권을 무시하고 신자 개개인이 제멋대로 성경과 성전을 해석할 때 큰 혼란이 일어나지만, 반대로 너무 교도권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교황님과 주교님들만이 신앙의 진리를 알고 있고, 나머지 신자들은 신앙의 진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교회 당국의 가르침과 지시 사항에 순명하기만 하라는 식이 된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활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교도권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초자연적 신앙 감각이라고 합니다. 신자들이 신앙의 진리 앞에서 단순히 수동적인(배우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역할도 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과 성전을 이해하는 능력은 교도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도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청각 능력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능력, 즉 영적인 세계에 관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받습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책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신앙 감각을 부여받았기에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계시된 진리의 이해와 전달에 참여한다. 그들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시고”(요한 16,13)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가톨릭교리서 91항).
그러므로 교도권(교황님과 주교님들 더 나아가 사제들)은 신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자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신앙 체험들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교도권 행사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신자들과 일치되어 행사된 교도권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가톨릭교리서 92항).
결론적으로 말해서, 참된 신앙이란 성경과 성전을 주의 깊게 듣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신자들에게 주어진 초자연적 신앙 감각만 너무 강조하면 혼란이 일어나고, 교도권만 너무 강조하면 경직된 신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교도권과 신앙 감각의 조화와 일치를 통해서 자라납니다.
[2012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3-5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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