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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6: 주님 공현 대축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5 조회수2,126 추천수0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6) 주님 공현 대축일

사람을 사랑하신 나머지 사람이 되신 하느님



- 캐나다 토론토 주교좌성당의 동방박사 방문 색유리화. [CNS 자료사진]


"그들은…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2).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심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초라한 구유에 누운 아기가 민족들의 빛으로 떠오릅니다.


◇ 살펴봅시다

㉠ 주님 공현 : 공현(公顯)이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합니다. 주님 공현은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합니다. 그 중 하나가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사건입니다(마태 2,1-12). 교회는 이 경배 사건을 특별히 '주님 공현 대축일'로 기념합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를 경배한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동방 박사들은 주변 이교(異敎) 민족들을 대표합니다. 이 이교인들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나아가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단지 유다인뿐 아니라 만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이스라엘에서 찾았음을 보여줍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으로 왔고, 아기가 있는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이 별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입니다(민수 24,17 참조). 이 다윗의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구약에서 예언된,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 곧 유다인들에게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입니다. 그렇다면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528항)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528항 참조).
 
㉡ 이집트 피난과 죄없는 아기들의 학살 : 마태오복음서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 이어 아기 예수와 그 부모의 이집트 피신(2,13-15), 죄없는 아기들의 살해(2,16-18) 그리고 이집트에서에 돌아옴(2,19-23)에 관한 기사들을 전합니다. 이집트 피신과 죄없는 아기의 살해, 두 사건은 빛에 대한 어둠의 저항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전 생애를 통해 많은 박해를 받으셨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돌아오신 일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출애굽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모세가 출애굽으로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됐듯이 예수님을 온 인류를 구원하실 결정적 해방자로 제시합니다(530항 참조).

하느님의 아들이 어떻게 사람일 수 있는가(470~478항) : 지난호(1196,1197호)에서는 예수님이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심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더 제기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어떻게 사람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강생의 신비스러운 결합에서, 성자는 인간 본성을 취하셨지만 소멸시키지는 않으셨다"(470항).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어 참으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으며, 죄 말고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아지셨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22항).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아지셨다'는 것은 인간 조건, 곧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지닌 역사적 인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랐다"(루카 2,51)는 성경 대목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이 되심으로써 예수님의 신성은 소멸되고 만 것일까요? 아닙니다. 451년 칼케돈에서 열린 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한 분이시며 같은 그리스도이신 외아들 주님은, 우리가 두 본성(곧 신성과 인성)을 혼동하거나, 변질시키거나, 분할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인정해야 한다. 두 본성의 차이점은 그 결합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본성의 고유함이 그대로 보전되어…결합되었다"(467항, 칼케돈공의회 신경).

같은 취지에서 230년 후인 681년에 열린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공의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는 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 두 의지가 작용하며 이 두 의지는 서로 대립하지 않고 협력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지는 당신의 신적 의지에 저항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이 전능한 의지에 순종한다"고 밝힙니다(475항).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노래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셨지만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필리 2,6-8 참조).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이 온전히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이것이 강생의 위대한 신비입니다.

 
◇ 정리합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에 관한 교리를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영원한 말씀이요 성부의 실체적 모습이신 성부의 외아들께서 강생하셨다. 그분은 신성을 잃지 않으시면서 인성을 취하셨다"(479항).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신적 위격의 단일성 안에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480항).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다. 이 두 본성은 서로 혼동되지 않으면서, 하느님 아들의 단일한 위격 안에 결합되어 있다"(481항).

-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적 지성과 의지를 가지신다. 이 지성과 의지는 성부와 성령과 공유하시는 당신의 신적 지성과 의지에 온전히 일치하고 종속된다"(482항).

- "그러므로 강생은 '말씀'의 유일한 위격 안에 결합된 신성과 인성의 놀라운 일치의 신비이다"(483항).


◇ 생각해 봅시다

강생의 신비에 대한 교리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을까요? 하느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셨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사람이 하느님의 품위로 들어 높여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만큼 존엄합니다. 못나고 가난하고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일지라도 더없이 존엄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위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강생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1월 6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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