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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리아를 믿는 교회 2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1998-12-08 조회수6,561 추천수6

천주교 신자들이여,

이제는 개신교 신자들의 멍청한 질문, 말도 안되는 질문에 그만 휘둘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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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MARIA>

이제는 교회와 직접 관련되는 인물에 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앞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으니, 성서에 나오는 인물 하나를 통하여 교회와의 관련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인물은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했던 역할은 대단히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고 하는 편이 올바를 것입니다.  인물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여인, 마리아를 가리켜서 교회의 어머니요, 신앙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는 남들이 이상한 시각을 갖고 쳐다 볼 정도(?)로 마리아를 공경하고 그를 통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마리아에 대하여

먼저 본론에 이야기 드릴 마리아를 이야기하기 전에, 마리아라는 이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름은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우리 이름에 영희, 철수라고 이름 붙이듯이 아주 보편적인 이름이었고, 속된 말로 길에 돌멩이가 있듯이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흔한 이름을 가진 여인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삶의 본보기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보고자 하는 마리아라는 여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탄생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등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몇 부분 언급되어 있는 것을 골라서 봐도, 그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분량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결론 한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혈통은 모계혈통제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역사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중요성을 따지고 역사를 이끄는 주체는 일반적으로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역할을 이렇게나마 성서에 담고 있다는 데서 대단한 중요성을 가진 분으로 설명을 합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봐서 마리아라는 여인에 대한 언급 분량이 적은 것이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라는 공통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그 마리아에 대해서 4개의 복음서에 기록하는 내용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

1,16에는 예수의 족보에 대해서 나오는 과정에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는데서 등장합니다.

1,18-25에서는 예수를 잉태하는 여인으로 나옵니다.  

12,46-50에는 복음선포에 나선 아들을 찾아보는 한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마르코 복음 :

아들을 찾아보는 경우에만 언급됩니다.(3,31-35)

 

루가복음 :

1,26이하,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과정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고,  

1,39이하에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2,22-40에서 아기 예수를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봉헌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2,41-52에서 예수나이 12살에 일어난 사건을 가슴속에 새기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

2,1-11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 기적을 요청하는 자상하신 어머니로 등장하고,

19,25-27에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대상으로 언급하는 중요성(?)과 견주어 보면, 성서에 나와있는 분량은 적은 편입니다.

<초대받은 당신에서는 ’구약에 예언된 마리아, 구원의 협조자로서 마리아, 구세주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로서 마리아, 교회의 모범으로서 마리아’를 언급한다. >

 

 마리아에 대한 호칭 1 -- 교회의 어머니

성서의 내용에 위와 같이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아들을 가장 가까이 보아왔고, 인류의 구원사업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는데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예수를 믿고 따른 사람들로써 교회가 이루어졌으므로 그 믿음을 처음부터 간직했던 분으로서 ’교회의 어머니’라고도 부릅니다.  즉 믿는 자들, 신앙인들의 삶의 모범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일을 가슴에 품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자세를 먼저 앞세우기보다 하느님의 자리를 먼저 생각했던 여인, 마리아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호칭 2 -- 신앙인의 어머니

이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이 죽었다고 부활, 승천하신 뒤에서 꾸준히 제자들의 모임에 함께 합니다(사도행전 1,14).  이것은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신 경우라 할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데서도 아들을 꾸준히 믿은 결과로 일어난 가나의 혼인잔치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도 신앙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새로운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향하여 ’이 분은 네 어머니(요한복음 19,25-27)’라고 하시며 맡기십니다.  마리아는 분명 특별한 신앙심을 가지고 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모든 것을 간직하고 가슴에 새기신 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분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에 우리는 그 분을 우리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공경은 우상숭배인가? -- 가장 커다란 반발에 부딪히는 질문

가톨릭, 천주교는 마리아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종교인가?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부딪히는 질문이며 동시에 가장 대답을 하지 못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이 질문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목사들에 의해서 교육을 받은 개신교 신자들입니다.

 

올바른 답을 먼전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제대로 모르며 덤비는 사람들이 하는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몇 가지의 방법으로 말씀드리죠.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어리석고 바보 같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한다고 해서 멸시하는 자식치고 제대로 되는 놈이 없는 법입니다. 혹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하는 편이 올바를 것입니다. 좋든 싫든 그러한 부모가 있었기에 그 사람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잘난(?) 자식이 있을 수 있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모가 못났으면,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죠.  거기서 내 부모가 엉터리요, 바보요, 나를 사람 대우 해주지 않는다고 말해야 ’그 사람 참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갈 데까지 다 간 세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좋든 싫든 간에 개신교의 뿌리는 천주교입니다.  프로테스탄트의 뿌리는 가톨릭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개신교가 태동할 때에 천주교에 잘못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정리가 되었고 지금은 그러한 요소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비판의 대상이었던 일들에는 ’가톨릭 신앙이 마리아와 관련된 요소’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이란 무엇인지 그 내용부터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우상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숭배가 무슨 뜻인지, 신앙의 대상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덤비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무서워서 피하거나, 몽둥이로 맞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죠.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나 말을 듣는 사람이나 똑같은 인격체인데 말입니다.  인격체는 인격체로 대우 해야죠.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는 그저 돌아서는 일밖에 다른 대응책은 없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우상 숭배 모습

우상숭배(偶像崇拜-Idolatry)라는 말은 우상(偶像)과 숭배(崇拜)라는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이 ’우상’의 뜻은 ’어느 표상(表象)이나 사물로 표현되는 거짓 신(神)에게 그 신이 그런 곳에 내재(內在)한다고 믿고 하느님께 드릴 예배를 바치는 행위’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아닌 어떤 피조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그것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아 추구하는 행위’도 가리킵니다.

성서에 나오는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행위는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황금송아지 경배사건입니다. 광야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90일만에 시나이 산에 도착합니다. 홍해를 건너는 일에서 이집트 병사에게 쫓기고 광야에 들어와서는 물이 없어 고생하고 먹을 게 충분하지 않아 고생하면서 노예생활이라도 좋으니 과거의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의 영도자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면서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금붙이로 황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외치는 소리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 온 우리의 신이다’이라고 선언합니다. 물론 순리에 어긋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공경의 자리에 인간이 만든 조물(造物)을 놓고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를 드렸으니 그것을 가리켜 우상숭배라 합니다.

무식한 사람은 본래 용감합니다. 잘 모르면서 가톨릭 교회를 향하여 외치는 소리 ’우상숭배 종교’하는 소리에는 대꾸할 필요조차 없는 무고죄에 해당하는 것이고 무식한 소리입니다.  본래 남대문을 보고 직접 보지 못한 사람과 말씨름이 붙으면 못 보고 설명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현실을 돌아보기   

한편으로 마리아를 우리가 공경하면서 ’우상숭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슬프기는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삶의 중심, 믿음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특히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은 경우 구태의연하기도 합니다.  그 소리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심이라는 것이 공부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서 그런 질문을 하니 대답을 못하죠. 그러면서 성당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생활에 확실성을 두지 못하고 이 종교, 저 신앙으로 흘러갑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종교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거기 신자의 90%가 ’옛 신앙은 천주교였다’고 한다는 웃지 못할 소리가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의 주(主) 선교대상은 천주교 신자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대로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당연한 공경을 받아야 할 성모님이 우상으로 전락하지는 않는지 정확히 가릴 필요는 있습니다.

분명히 마리아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만 드리는 공경을 받을 수 있는 인물, 역할, 중요성을 가진 분은 아닙니다.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나고 남다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공경하는 것은 보통의 인간이 하기 힘들만큼 하느님의 뜻에 일치했고 그 분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셨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의 행동은 어떤 것이 있는가?

율법에 따라 미혼모는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할 상황에서 아기를 임신하겠다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분,

성전에 아기를 봉헌하면서도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던 분,

12살 사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전혀 몰라보는 듯한 섭섭한 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참으신 분

장성한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섰는데도, 전혀 어머니로서 대우하지 않은 슬픔을 감내하신 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의 견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데도 그래도 굳은 신뢰심을 가졌던 분,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 그 슬픔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분(=삐에따 상) >

이러한 모습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 모범이 되기에 ’가톨릭 신앙’에서는 신앙인의 모법으로 그녀를 공경하고 특별한 예우를 바치는 것입니다. 흔히 모르고 말하는 이들의 견해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 삶의 중심을 올바로 잡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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