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7)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높아만 가는 전 세계 ‘청년 실업률’
인류의 근현대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협동조합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세계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급증하였습니다. 이는 협동조합이 위기를 극복하는 강한 체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협동조합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온 인류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옛날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거나 품앗이로 모내기를 한다든가, 저수지나 하천, 숲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규칙을 만들고 지켜온 것 등이 모두 사회적 경제에 속합니다.
사회적 경제는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 걸쳐 공동선을 위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사회구성원들의 통합과 전체적 선익을 도모하면서 인간적 향상을 추구하며 공동체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인류가 진화시켜온 사회적 경제의 한 모습인 협동조합은 나눔, 사랑, 정의, 평화 등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을 잘 담아내고 있는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지역 협동조합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으며,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이탈리아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 실업률이 11.1%로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는가 하면, 20~30대의 청년실업률은 36.5%를 기록해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리는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은 놀랄 만큼 평온합니다. 이 지역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협동조합들의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한 외부 충격을 고르게 흡수하는 ‘완충경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협동조합 네트워크에는 실업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협동조합들이 좀처럼 해고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들은 고용을 축소하기보다 전체 임금을 삭감해서라도 일자리를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엄청난 경제위기의 파고 속에서도 이 지역의 실업률은 3%를 밑돌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밀리아-로마냐의 힘은 신뢰와 협동의 네트워크에서 나옵니다. 경쟁력 확보의 비결이 동시에 위기 타개의 비결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협동조합 공동체들이 누리는 안정과 평화의 바탕에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향유했던 신뢰와 협동을 보장하는 독특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들의 협동조합으로 불리는 협동조합 연합체인 ‘레가 코프(Lega Coop)’가 있어 개별 협동조합을 대변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단위 협동조합들은 당기순이익의 3%를 레가 코프에 적립해 ‘조합기금’(coopfund)을 조성하고, 레가는 이를 협동조합에 대한 홍보, 정치적 옹호 및 대변, 협동조합 설립과 발전 지원, 공동 활로 등을 모색하는데 활용합니다. 이뿐 아니라 레가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이 기금을 사용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협동조합들의 모습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믿음을 바탕으로 한 나눔과 사랑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월 20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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