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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리문답 해설 (21): 혼인성사, 준성사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8-31 조회수5,757 추천수1

제 7 절 혼인성사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성직자로 살아가는 저는 가끔씩 사람들에게서 <혼자 살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듣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적어도 혼인성사를 말하는 입장에서는 틀린 말입니다. 현재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가끔씩 혼자 산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만,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제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그 말을 우리가 가끔씩 쓴다면 <함께 사는 시작을 의미하는 혼인>의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정한 성사 가운데 끝으로 <혼인성사>를 다룰 차례입니다.

 

   혼인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혼인성사를 모르는 분들은 꽤 있습니다.  어렵지도 않은 말이 두 글자 더 달라붙은 것뿐인데도 사람들은 늘 써오던 말에서 조금 달라지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주 새로운 대하는 것처럼 놀랍니다.  혼인성사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혼인성사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첫 번째 항목입니다.

358-315. 혼인성사는 무엇입니까? : <답> 혼인성사는 예수께서 부부의 인연을 성사로 세우신 것이니, 이로써 부부가 은총을 받아 종신토록 화목하고 자녀들을 잘 가르쳐서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성사를 <이러저러한 것이 성사(聖事)>라고 규정한 대목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과 강조의 입장에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성사를 일곱 가지로 구별하고 그 커다란 테두리에서 사람의 개별적인 생활에 하느님이 어떠한 관심을 갖고 계시는지, 교회는 어떠한 삶의 정신을 강조하는지 그 설명을 달리할 뿐입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또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서 이루는 합일의 최고 모습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처음에는 자신의 기다리던 짝이 나타났을 때 반겨하던 ’아담의 소리’가 나옵니다.  임승필 신부님이 번역하신 구약성서 새 번역에서는 적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기 2,24)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가톨릭의 혼인은 "따로 떨어져 있던 둘이 만나서 본래의 온 짝을 이루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축복하기라도 하듯이 신약성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혼인잔치 집에서 베푸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의(自意)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혼인은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서로 다른 장소에 떨어져 있던 개체가 만나서 하나가 되는 참으로 신비한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이 혼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축복하신 그 혼인을 우리 사람들도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요, 출발점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혼인성사는 이렇게 인간적으로 하나가 되어 출발하는 모습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이 영원토록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정신과 축복을 받는 출발점으로서 <혼인>을 가톨릭에서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특징을 이야기 할 차례입니다.  

358-316. 가톨릭 혼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답> 가톨릭 혼인의 특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정당한 결합으로서 절대로 이혼할 수 없는 것입니다.

358-317. 가톨릭의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 <답> 가톨릭의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란 부부 서로 배우자가 살아있는 한, 다른 이와 절대로 동거하거나 결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교리의 내용에 이런 말이 들어있다는 것은, 처음에는 그 의향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반증도 되는 것이고, 올바른 의향을 회복하자는 의도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혼인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만으로 이루어지는 혼인을 ’혼인의 단일성’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는 교회의 정신에서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야사이긴 하겠습니다만, 아프리카에 선교될 때에 크게 부딪힌 문제의 하나도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의 특성은 우두머리인 추장을 세례 받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추장은 보통 일부다처제였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들인 노력도 만만치 않았다는 소리도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혼인의 특징은 ’혼인의 불가해소성’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느님이 맺어주신 인연’이 성립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노력으로 그 인연이 사라지거나 영향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현실에 맞춰 해석하면,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이혼(離婚)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실상은 ’혼인이 아닌데 혼인인 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있다는 소리도 됩니다. 이 후자(後者)의 경우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갈라서게 된다면, 그것은 애초에 혼인이 아니었으니 4갈라서고 따로따로 서게 되는 일이 인정될 수도 있다는 소리이지만, 그런 일은 결코 권장할 수 없는 슬픈 일입니다.  

 

  다음은 혼인을 이루기 위한 조건입니다.

358-318. 혼인성사를 받기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 <답> 혼인성사를 받기에 필요한 조건은 아무 장애가 없어야 하고 교리를 넉넉히 알고, 견진성사를 받아 적어도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며 본당신부와 두 증인 앞에서 예식을 거행해야 하며 온전한 자유로 서로 원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혼인의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혼인은 남자 나이 16살, 여자 나이 14살 이상이어야만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에 근거해서 의무를 가지고 혼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물론 이 규정과 국가의 규정에 차이가 있다면, 국가의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이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올바른 혼인을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더 따를 것을 말합니다.  혼인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기 합당한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결정입니다. 순수한 본인의 결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강요나 억압이 들어있는 혼인의 약속이라면, 그것은 ’무효일 수밖에 없는 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자녀를 혼인시키고자 하는 부모가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자녀들의 삶의 자세를 존중해주고,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바도 신앙의 정신에 따라 올바로 살 것을 알려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합당한 혼인이 준비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성사(聖事)라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혼인의 규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를 구속하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을 알려주고 그에 합당한 자세를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규정하는 내용들을 지키지 않고 이루어지는 혼인을 가리켜 ’조당(=혼인장애)’이라 말하며 그 장애가 해결될 때까지 신앙인의 성사생활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358-319. 자녀들의 혼인에 대하여 부모들이 해야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답> 자녀들의 혼인에 대하여 부모들이 해야 할 본분은, 자녀들의 장래와 특히 그들의 영신적 이익을 가장 중요히 여기고 주선해 주어야 하며, 그들의 정당한 자유를 억압하지 말고, 미리 적어도 한 두 달 전에 주임신부와 상의하여야 합니다.

 

  혼인이 올바른 것으로 남기 위해서 혼인 당사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를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길게 설명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서로 간에 사랑이 필요하고, 존경해야 하며, 같이 살아야 하고,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혼인이란, 누구의 눈치 때문이라든가 이러저러한 눈속임을 위해서 이루어질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58-320. 부부가 서로 지킬 의무는 무엇입니까? : <답> 부부가 서로 지킬 의무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같이 살아야 하고,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다음은 자녀를 낳는 일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과학적인 방법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있지만, 하느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것을 깨는 것이 바로 가족계획이고 인공적인 피임방법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에 대한 교회의 판단은 단호합니다. 사용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갖는 마음자체도 잘못된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녀는 다 제가 먹을 것 지고 나온다’는 식으로 모든 일을 일어나는 그대로 취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인공적인 의도를 가미하지 않고 권장하는 방법으로 자연피임법은 있습니다.  

358-321. 천주교회에서 가족계획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 <답> 천주교회에서는 가족계획에 대하여 비윤리적이며 비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8 절 준성사(準聖事)

 

  이제까지는 성사(聖事)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은 성사에 준(準)하는 성사에 대해서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이 준성사 규정에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성물 축복, 집 축성과 같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준성사 역시도 우리가 신앙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힘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일에서는 같은 것이지만, 약간은 차이를 두고 말합니다.  그 커다란 차이가  두 번째 항목입니다.  성사는 하느님의 힘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힘이 존재하지만, 준성사의 힘이 우리에게 미치는 것은 우리의 준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가 성사에 대해서는 사효(事 )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준성사에 대해서는 인효(人效)적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358-322. 준성사는 무엇입니까? : <답> 준성사는 천주교회에서 신자들의 영신적 유익을 위하여 7성사를 본떠서 세운 물건이나 행동이니, 구마 축성 강복 같은 것입니다.

358-323. 준성사와 성사가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 <답> 성사는 장애만 없으면, 행하는 예절의 힘으로 은총을 직접 내어 주지만, 준성사는 받는 자와 행하는 자의 성덕과 정성에 의하여 은총과 그 효력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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