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9) 협동조합이 지닌 ‘힘’
“교육 없는 ‘협동조합’은 없다”
그리스도교 정신과 전통이 강한 지역이나 문화 속에서 협동조합들이 좋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 현실은 협동조합이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제도적 산물임을 뛰어넘어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담고 있는 역동적인 조직임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향 모색과 실천을 통해 발전시켜가고 있는 협동조합이라는 제도 안에는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진리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이 경제위기 등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도 바로 협동조합이 지닌 이러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로서 협동조합이 세상 속에서 탁월하고 빼어난 모습을 드러내는 힘은 바로 그리스도교 전통을 바탕으로 한 교육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 분포돼 있는 협동조합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합원들에 대해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교육만으로 쉽게 조합원으로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이 큰 협동조합일수록 다양하고 단계적인 교육과정 이수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합의 정신과 전통이 몸에 배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들 가운데는 조합 가입 의사를 밝히고 5년이 지난 뒤에야 정식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만 봐도 협동조합운동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동조합의 나라’ 이탈리아만 봐도, 협동조합의 도시라 불리는 트렌토나 볼로냐 등 협동조합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도시일수록 어릴 때부터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중·고교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하는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육 내용은 협동조합의 정신과 역사, 작동 원리 등 협동조합을 둘러싼 일반적인 것이지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러한 이론보다 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지는 직·간접적인 체험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나 형제의 손을 잡고 ‘코프(Coop)’ 등 협동조합 공동체를 오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체계와 정신 등을 배우게 될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성을 함께 키워나감으로써 실천적인 나눔과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일상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는 정신들은 사랑, 나눔, 일치, 협력, 평화 등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맞닿아 있어 굳이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가톨릭 정신에 젖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수많은 조합원들의 관심과 배려를 통해 건강한 먹을거리와 따뜻한 정신적 지지 속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특별한 수고를 더 기울이지 않더라도 일상생활과 밀접한 협동조합 안에서 전인적인 성장이 이뤄지는 것이니, 이만큼 효율적인 교육의 장도 없을 듯합니다. 이처럼 교육과 협동조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교육 없는 협동조합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2월 3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