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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12: 사순 제2주일 - 사순절과 거룩한 변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23 조회수3,252 추천수1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2) 사순 제2주일 - 사순절과 거룩한 변모

어떠한 상황에도 구원의 희망 놓아선 안 돼



- 거룩한 변모 사건은 사도들에게 미래의 영광에 대한 희망을 안고 현실의 고통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사진은 이스라엘 타보르 산 정상에 있는 기념 성당 안의 거룩한 변모 그림.


사순 제2주일에 듣는 복음은 거룩한 변모에 관한 내용입니다. 타보르 산 위에서 예수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고 제자들은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거룩한 변모에 관한 복음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에 선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살펴봅시다

㉠ 사순시기(538~450) : 예수님께서는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바로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지내십니다. 단식 기간이 끝났을 때 사탄이 예수님께 다가와 유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집요하게 공격하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교회가 보통 사순 제1주일에 선포하는 이 복음 말씀(루카 4,1-13)은 신비로운 구원 의미를 가리킵니다. 우선 인류의 조상인 첫 아담은 뱀의 유혹에 떨어져 죄를 지었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꿋꿋하게 물리치심으로써 구원을 가져다주십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느님께 숱하게 반항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끝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느님의 종'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이 사건은 수난과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오로지 하느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을 예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교회는 40일 동안 참회와 고행의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부활을 뜻있게 경축할 준비를 합니다. 이 시기를 사순(四旬)시기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해마다 40일 간의 사순시기를 통하여 광야의 예수님 신비와 결합한다"(540항).
 
㉡ 거룩한 변모(554~556, 568항) :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한 사건(루카 9,28-36)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고하신 다음에 나옵니다. 이것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적으로 보여주시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을 보고 스승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사람들에게 잡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이 고난을 겪고 죽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베드로가 나서서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대듭니다. 충격이 컸던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 말은 들리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 하고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풀이 죽어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한 신비로운 사건이 타보르 산 꼭대기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영광을 잠깐이나마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 곧 성부의 소리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감싼 구름은 바로 성령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타보르 산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삼위께서 모두 나타나셨으니, 성부께서는 목소리로, 성자께서는 인간으로, 성령께서는 빛나는 구름으로 나타나셨다"(555항).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당신 수난에 대비하여 사도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려는 데"(568항)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또 사도들이 미래에 "영광에 차지하게 되리라는 희망"(568항)을 안고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 알아둡시다

희망(1812~1821, 2090~2092항) : "희망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의 행복인 하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향주덕이다"(1817항). 여기서 향주덕(向主德)이란 그 근원과 동기와 목적이 바로 하느님인 덕을 말합니다.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부르는 향주덕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 세 가지를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 희망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넣어주신 행복을 바라는 덕"입니다. 이 덕은 갈망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정화해 하늘 나라를 향하게 합니다. 곧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행복을 향하게 합니다. 참행복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참행복선언에서 잘 나와 있습니다(마태 5,3-12). 희망은 또 사람들을 실망하지 않게 보호하며, 버림받을 때 언제나 힘을 북돋아 주고,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열어 주며, 이기주의에서 보호하여 사랑의 행복으로 이끌어 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처럼 희망의 본보기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 희망은 안전하고 든든한 영혼의 닻이며 "구원을 위한 싸움에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5,8) 하고 권고합니다. 로마 신자들에게는 "희망 속에서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12,12) 하고 당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은 희망을 거스르는 죄이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그분의 자비로우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2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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