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Q&A
“저에게 십자가는 무겁고 힘든 의미로 다가오는데, 교회가 가르치는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십자가는 분명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느님 나라에 가는 유일한 길로 죄수들을 처형하는데 사용했던 십자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으셨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 십자가이니,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사랑으로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잔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12항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그늘진 곳으로 도망쳐 숨는 인간의 비참함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으셨습니다.
희생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병으로 심하게 고통 받고 신음하는 자식의 회복을 위해 온 밤을 지새우며 돌보는 어머니의 희생을 누가 고생이라 말하겠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셨고, 아들은 십자가에 오르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참조) 잃었던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되찾아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고 그리스도는 힘없이 실패했다고 비웃습니다. 죽음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뒤따르겠다고 고백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어리석음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5)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받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죽음을 상징하는 어둡고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다시 낙원으로 초대하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희망이고 사랑의 절정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13항 참조)
세상의 문명은 눈부실 정도로 발달하여 겉으로는 화려함을 뽐내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이루어야 할 목표나 행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에게 달콤함을 풍기지만 그 뒷맛은 몹시 씁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나라의 좁은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됩니다. 아담의 불순종을 지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이 있으며, 하와의 불신과 교만함을 치유하기 위해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함이 십자가 아래 언제나 함께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 이외에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셨던 마지막 말씀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를 기억하십니까? 그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의 어려움에 좌절할 때마다 희망의 메아리가 되어 십자가 위에서 끊임없이 울려옵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 참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600-601항, 604-607항, 610-623항 (사목국 연구실)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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